남경유적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남경유적

[ 南京遺跡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주거 · 생산>주거유적
유물유적시대 철기
행정구역 평양시>삼석구역
등급 일반유물유적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에 위치해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약 기원전 2000년기 말~기원전 1000년기 초의 유적이다. 이 유적 청동기시대층에서는 22개의 집터와 돌널무덤이 드러났다. 집터들은 길이 7~8m, 너비 4~5m 정도이며 땅을 40~50cm 깊이로 파고 만든 방형의 움집이다. 집터바닥들에서는 숯이 된 판자들과 삿자리가 나왔는데, 이것은 당시 주민들이 판자를 켜서 집안을 꾸몄으며 방바닥에는 삿을 깔기도 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물 가운데는 팽이토기와 여러 가지 석기들이 있으며 탄화된 낟알도 있다.

주목되는 것은 36호집터에서 발견된 벼를 비롯한 오곡이다. 벼, 콩, 조, 기장, 수수 등 5가지 낟알들은 집터 한가운데 직경 1m 범위의 흙 속에 뒤섞여 흩어져 있었다. 남경유적에서 오곡이 나온 것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산활동에서 이미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농업이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지배적인 것으로 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벼는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남경유적에서 발굴된 벼의 평균 길이는 4.5mm, 너비는 2.5mm, 길이와 너비의 비례는 1.8:1로서 짧은 알종류에 속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의를 끄는 것은 일본의 기원전 3세기경의 유적들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벼가 남경유적의 것과 같은 짧은 알종류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남경유적의 36호집터를 C14년대 측정법으로 측정한 것에 의하면 그 절대 연대는 기원전 999±72(T1/2=5570년)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 선조들은 이 시기에 벌써 발전된 벼농사를 지었으며 일본을 비롯한 이웃지역 주민들에게 벼 재배법을 전하였다는 것을 과학적인 자료로써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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