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릉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단군릉

[ 檀君陵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고분 · 왕릉>왕릉
유물유적시대 청동기
행정구역 평양시>강동군>문흥리
등급 국보급
지정번호 국가지정문화재 국보급 제174호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기슭의 능선마루에 위치해 있는 왕릉. 단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첫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이다. 단군릉은 1993년 10월에 착공하여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건설되었다. 단군릉의 총부지면적은 45정보이다. 단군릉은 크게 단군릉개건기념비구역과 석인상구역 및 중심구역으로 나뉜다.

단군릉개건기념비구역에는 단군릉개건기념비와 단군릉수축비 및 능의 문기둥이 포함되어 있다. 단군릉개건기념비는 비신과 비머리, 받침대로 되어 있다. 비의 전체 높이는 8m이며 그 가운데서 비신의 높이는 4.6m이고 두께는 1m이다. 비몸의 앞면에는 ‘단군릉개건기념비’라는 글발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헌시가 새겨져 있다. 단군릉수축비는 강동 일대의 유지들과 각지의 이름 있는 인사들과 유력자들을 망라하여 조직한 단군릉수축기성회가 1936년에 단군릉수축준공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비의 높이는 1.91m, 너비는 0.5m, 두께는 0.39m이다. 비의 정면에는 단군의 업적을 전하는 글이 한자로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국한문으로 된 글이 새겨져 있다. 비의 왼쪽 면에는 단군릉수축기성회원들의 이름이, 오른쪽 면에는 당시 단군릉수축에 필요한 자금을 희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기둥은 단군릉의 문을 대신한 것으로서 능앞 좌우에 각각 5개씩 가로 줄지어 세워져 있다. 제일 안쪽에 세워진 좌우문기둥의 높이는 각각 10m이고 제일 바깥쪽의 작은 문기둥의 높이는 각각 1.5m 정도이다. 문기둥은 우리나라 고대시대의 선돌형식을 살린 것이다.

석인상구역은 단군의 아들과 측근 신하들을 형상한 조각상들이 배치되어 있는 구역으로서 돌계단 좌우에 전개되어 있다. 석인상구역은 다시 무덤무지에서 가까운 윗단과 아랫단으로 나뉜다. 윗단의 좌우에는 단군의 네 아들상이 각각 좌우에 두상씩 마주선 상태로 배치되어 있고 아랫단 좌우에는 측근 신하상 8상이 좌우에 4상씩 마주선 상태로 세워져 있다.

네 아들상 중에서 우측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이 맏아들인 부루의 상이고 그 다음 상이 셋째 아들 부우의 상이며 부루상의 맞은편의 상이 둘째 아들 부소의 상이고 부우상의 맞은편 상이 넷째 아들 부여의 상이다. 측근신하상들이 배치된 아랫단 우측의 제일 앞으로부터 제일 뒤의 마지막 단까지는 신지, 치우, 주인, 여수기 상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고 좌측의 제일 앞으로부터 뒤의 마지막 단까지는 팽우, 고시, 해월, 비천생 상의 순위로 배치되어 있다. 석인상들은 다 각기 담당한 기본 직분의 특성에 맞게 개성을 살리면서도 의상이나 장신구 등에서는 큰 차이가 없게 형상되었다.

중심구역은 길이(남북) 101.7m, 너비(동서) 97.5m 되는 넓은 구역으로서 그 안에 한 단을 높인 길이 84m, 너비 80m 되는 기단이 있고 이 기단 위에는 무덤무지를 중심으로 하고 돌상과 돌향로, 돌범상과 망주석이 배치되어 있다. 기단 밖의 구역에는 돌등과 검탑이 서 있다. 무덤무지는 위가 잘린 정4각추형으로서 밑단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차례줄임하여 높이 쌓은 돌무덤무지이다. 무덤무지의 밑변 한 변의 길이는 50m이고 높이는 22m이다. 무덤무지는 모두 크게 9단으로 되었고 매개의 단은 다시 세 단으로 나누어 조금씩 차례줄임하였다.

무덤무지를 돌로 계단을 지어 9층으로 쌓은 것은 우리 선조들이 고대와 그 이후 시기에 무덤을 돌로 만들거나 여러 개의 계단을 지어 쌓았던 전례를 살린 것이며 9라는 숫자를 가장 높고 상서로운 수로 여겨온 관계를 살린 것이다. 무덤무지 정면 중앙에 능기단벽과 약간 사이를 두고 있는 제단 위에 돌상과 돌향로가 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제사지낼 때 제단을 만들고 제상을 차리며 향불을 피우던 관습을 따른 것이다.

무덤무지의 네 모서리에는 각각 한 쌍씩의 돌범상이 있다. 이것은 조선범을 형상한 것으로서 마치도 단군릉을 지켜선 파수병마냥 바깥을 향하여 서 있다. 돌범상은 큰 댓돌 위에 길이 6.2m, 높이 3.5m, 잔등너비 2.2m, 질량이 90여 톤에 이르는 육중한 크기로 형상되어 있다.

무덤무지정면의 두 모서리에 있는 돌범상 앞의 능기단 좌우모퉁이에는 망두석이 각각 1개씩 세워져 있다. 제단이 있는 능기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채 못 미친 곳의 좌우에 돌등이 각각 한 개씩 세워져 있다. 그 높이는 6.5m이다. 중심구역의 제일 바깥 네 모서리에는 고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무기였던 비파형 단검을 형상한 검탑이 세워져 있다. 검탑은 구리로 만든 검몸부분과 화강석받침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검몸의 높이는 5m이다. 이 검탑은 동방의 강성대국이었던 고조선의 위용과 발전된 문화상을 보여준다.

무덤칸은 무덤무지의 중심에 기단과 거의 수평되는 위치에 있다. 무덤칸으로는 뒷문(북쪽)을 거쳐 무덤칸벽까지 곧게 낸 복도와 무덤칸 주위에 낸 복도를 거쳐 무덤칸 앞(남쪽)의 문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다. 문은 뒤쪽 출입문, 곧은 복도를 지나 무덤칸의 주위로 갈라지는 곳에 있는 문, 무덤칸 남쪽의 문 등 세 개가 있다. 모든 문은 각각 두 짝씩 합쳐 여닫게 된 돌문으로서 한 짝의 높이는 2.05m, 너비는 0.87m, 두께는 0.3m이고 그 질량은 1.2톤이나 되지만 쉽게 여닫게 되어 있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복도의 너비는 1.8m, 높이는 2.7m이다.

무덤칸은 바른4각형모양의 평면구조로 되어 있으며 일정한 높이의 벽면 위에 2단의 평행고임과 2단의 삼각고임을 배합한 형식의 천장을 하였다. 무덤칸 한 변의 길이는 각각 5.7m이고 벽면의 높이는 3.4m이다. 무덤칸바닥에는 2개의 관대가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놓여 있고 그 위에는 단군과 그 아내의 유골이 있는 관이 각각 놓여 있다.

유골은 유리관 안에 있으며 유리관은 나무관으로 덧쌓았다. 무덤을 향하여 왼쪽의 것이 단군의 유골이 들어 있는 관이고 오른쪽의 것이 단군의 아내의 유골이 들어 있는 관이다. 관의 길이는 각각 2.2m, 너비는 0.93m, 높이는 0.88m이다. 관대의 길이는 각각 2.3m, 너비는 1m, 높이는 0.8m이다. 무덤칸 정면에는 단군화상이 걸려 있다. 이와 같이 단군릉은 우리 민족의 건국시조 단군의 유골을 안치하고 있고 단군조선시대의 발전된 문화와 정치, 경제, 군사적 위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내용을 풍부히 담고 있으며 민족의 전통적인 무덤양식에 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하여 민족성이 매우 짙은 문화적 재보로 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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