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남리유적

조선향토대백과 유물유적정보관 : 유적

노남리유적

[ 魯南里遺跡 ]

분류 유물유적정보관>유적>주거 · 생산>주거유적
유물유적시대 청동기
행정구역 자강도>시중군
등급 일반유물유적

자강도 시중군 노남리에 있는 유적. 청동기시대로부터 고구려 초기에 이르는 시기의 유적이다. 유적은 장자강 기슭에 있는 무덤들과 집터들로 이루어졌다. 무덤들은 고구려 초기의 돌무지무덤과 돌칸흙무덤으로서 미타골골짜기, 남파동 등 4곳에 무덤떼를 이루고 있다.

미타골골짜기의 무덤은 산자갈로 쌓은 돌무지무덤이며 장강군 명신리 내평동의 것은 강자갈로 쌓은 돌무지무덤으로서 모두 10여 기 밖에 안 된다. 주되는 무덤들은 강계시 내용동 남파동과 공귀동 간평참에 있다. 남파동무덤떼는 170기 가량 되며 약 절반은 돌무지무덤이고 나머지는 돌칸흙무덤이다. 강돌로 쌓은 돌무지무덤은 강기슭에 한줄로 길게 널려있고 돌무지무덤에 속하는 돌기단무덤은 그에 연이어 놓여 있다. 돌무지무덤 다음에는 돌칸흙무덤이 놓여 있다.

무덤들의 배치상태는 무덤형식이 사용되던 선후관계를 잘 보여준다. 돌기단무덤에는 무덤길의 시설이 있는 것과 없는 것, 곽이 2개인 것과 하나인 것이 있다. 돌칸흙무덤의 무덤칸의 형식은 다양하다. 하나의 무덤무지 안에 무덤칸이 2개 또는 3개 있는 것이 있으며 지하에 키낮은 돌칸을 마련하고 평천장을 하였으므로 지상에 천장돌만 나와 있는 것도 있다. 또 커다란 판석 하나로 뚜껑돌을 한 반지하무덤은 고인돌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물로는 널못, 쇠활촉, 팔찌, 주머니칼, 질그릇 등이 있었다. 간평무덤떼에서는 뿔로 만든 칼손잡이와 널못이 나왔다.

집터유적은 간평과 남파동에 있다. 간평에 있는 집터는 화독터가 2개이며 세죽리유적(평안북도 영변군)의 청동기시대 마지막시대의 것과 같은 짜임새이다. 남파동유적은 두 개의 문화층을 이루고 있다. 아래문화층은 미송리유적(평안북도 의주군)과 같은 시대의 집터이다. 깊은 움집이며 화덕자리를 하나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뿌리나래활촉, 반달칼 등 석기와 꼭지손잡이가 달린 깊숙한 바리가 나왔다.

노남리유적의 청동기시대층은 세죽리유적과 대평리유적(평안남도 북창군 북창읍)의 청동기시대의 것과 강한 공통성을 가진다. 남파동유적의 윗층은 고구려시기의 문화층이다. 이 문화층은 다시 두 시기로 나뉜다. 첫 시기에 속하는 것에는 몇 개의 구덩이가 있다. 여기에서 적은 양의 쇠찌꺼기, 명도전조각 등과 함께 갈색마연토기과 검은간그릇이 기본을 이루는 작은 질그릇들이 나왔는데 단지, 보시기, 접시 등이다. 돌림판을 쓰지 않고 만들었고 예쇠같은 것으로 문댄 자리가 그릇겉면에 보인다.

둘째 시대의 질그릇은 같은 갈색마연토기과 검은간그릇이지만 만든 솜씨가 훨씬 정교해지고 겉을 곱게 갈았다. 그릇에는 네 개의 띠손잡이가 달린 시루, 굽달린그릇, 귀잔 등이 보이며 흰색의 굵은 모래를 섞은 그릇과 회색질그릇도 나타났다.

이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2호집터와 쇠부리터가 있다. 2호집터는 두 개의 ‘ㄱ’자로 된 외곬의 구들을 가진 집으로서 작업장으로 쓴 것 같다. 여기에서 많은 양의 숫돌, 송곳, 띠고리, 청동팔찌, 가락고동, 오수전, 명도전조각 등과 많은 질그릇조각들이 알려졌다. 이 집의 동쪽에 있는 쇠부리터는 토성리유적(자강도 중강군)의 그것과 함께 고구려 초기의 연철시설로서 돌과 점토로 만든 노와 쇳물을 받는 쇠탕으로 이루어졌다. 노남리유적 고구려시기층은 고구려가 국가를 이루던 시기의 역사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고구려가 그 첫 시기부터 높은 연철기술을 가지고 높은 생산력발전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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