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말세 우물

신비의 말세 우물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기이설화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충청도
• 참고문헌 : 한국불교전설99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몇 해가 지난 어느 해 여름 오랜 가뭄으로 산하 대지는 타는 듯 메말랐다.
더위가 어찌나 기승을 부렸던지 한낮이면 사람은 물론 짐승들도 밖에 나오질 못했다.
그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금의 충청북도 사곡리 마을을 지나며 우물을 찾았다.
더위에 먼 길을 오느라 갈증이 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스님의 눈엔 우물이 보이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스님은 어느 집 사립문을 밀고 들어섰다.
「주인 계시니까 ? 지나가는 객승 목이 말라 물 한 그릇 얻어 마실까 합니다.」
「대청마루에 잠깐 앉아 계세요 곧 물을 길 어 올리겠습니다.」
주인 아낙은 길어다 놓은 물이 없다며 물동이를 이고 밖으로 나갔다.
스님은 아낙의 마음 씀이 고마워 대청마루에 않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러나 물 길러간 아낙은 몇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목마른 것도 바쁜 길도 잊은 채 호기심이 생겨 아낙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저녁 무렵, 아낙은 얼마나 결음을 재촉했는지 숨을 몰아쉬며 한손으로 구슬땀을 닦으면서 물동이를 이고 왔다. 「스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낙은 공손히 물을 떠 올렸다.
우선 시원한 물을 마신 스님은 궁금증을 풀양으로 아낙에게 물었다.
「거 샘이 먼가 보군요.』
「이 마을엔 샘이 없사옵니다. 여기서 10리쯤 가서 길어온 물이옵니다.」
아낙의 수고를 치하한 스님은 무슨 생각에선지 짚고 온 지팡이로 마당을 세 번 두들겨 보았다.
『과연 이 마을은 물이 귀하겠구려. 마을 땅이 층층이 암반으로 덥혀 있으니 원‥‥그러나 걱정 마시오. 내 주인 아주머니의 은공에 보답키 위해 좋은 우물 하나를 선사하고 가리다.」
이 말을 남긴 스님은 그 집을 나와 마을구석구석을 살핀다.
동네 한복판에 이르러 스님은 큰 바위에 다가서서 역시 지팡이를 들어 세 번 두들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우물을 파다가 도승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청년들에 게 일렀다.
「이 바위를 파시오.」
「스님, 여기는 바위가 아닙니까? 물이 나을 리 만무합니다.」
청년들이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으나 스님의 표정은 태연자약할 뿐 아니라 엄숙하기까지 했다.
「자, 어서 여길 파시오. 겨울이면 더운물이 솟아날 것이고 여름이면 냉차 같은 시원한 물이 나을 것 입니다. 뿐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장마 져도 넘치지 않을 것이오.』
청년들은 도승의 말에 위압당한 듯 어안이 벙벙했다.
이때 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더니 스님의 말씀을 믿고 한번 파보자고 제의 했다.
장정들이 밤낮으로 사흘을 파도 물줄기는 보이질 많았다.
스님은 계속 팔 것을 명했고, 청년들은 내친걸음이니 시키는 대로 했다.
닷새쯤 봤을 때다 바위틈 속에서 샘이 솟기 시작했다 밝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 금방 한길 우물 깊이를 채웠다.
청년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어 서로 부여안고 울고 춤을 쳤다. 샘물이 솟는다는 소문에 온 마을이 뒤집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물 구경하러 모여 들었고 물을 마시며 기매했다.
그들에겐 생명의 샘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모습을 아무 표정 없이 지켜보던 스님이 입을 열었다.
「자, 조용히 하고 소승의 말을 들으세요. 앞으로 이 우물은 넘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을 것이나 무슨 변이 있는 날에는 나라에 큰 변이 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말을 이었다.
「지난날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 임금을 폐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만약 이 우물이 넘치는 날에는 그보다 몇 배 더 큰 변란이 일어 날 것 입니다.」
「스님, 이 우물이 그렇게 무서운 우물이면 차라리 지난날처럼 10리 밖 개울물을 길어다 먹고 살겠습니다.」
「너무 걱정들 마시오. 이 우물이 세 번 넘치는 날이면 이 세상은 말세가 되니까, 그 때 여러분은 이 마을을 떠나시오.」
이 말을 남긴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표연히 자취를 감췄다.
마을 사람들은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 으로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
『평생 숙원인 우물이 생기긴 했네만·」
「과연 기이한 일일세 그려.」
「그 도승 말을 너무 염려할 것 없으이.」그러나
「우물이 세 번만 넘치면 말세가 온다.」
는 소문은 차츰 널리 퍼져나갔다.
「과연 우물이 넘칠 것인가.」
사람들의 입에서 화제가 되는 동안 세월은 어느덧 몇 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물 길러 나간 아낙하나가 우물가에서 기절을 했다.
우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은 삽시간에 이웃 마을까지 퍼졌다. 사람들은 무슨 변이 일어날지 몰라 안절부절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왜구가 쳐들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 난이 곧 임진왜란 이었다.
또 한번 이 우물이 넘친 것은 1950년 6월 25일. 그날도 이 우물은 새벽부터 철철 넘치고 있었다 한다. 6 · 25의 민족적 비극을 알리기 위한 우물의 충정이었다고 마을사람들은 지금도 말하고 있다. 아무 일 없이 정량을 유지한 채 조용히 샘솟고 있는 이 우물이 과연 또 넘칠 것인가.
그리고 스님의 예언대로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인가. 약 50호의 농가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충북 증평군 증평읍 사곡리 마을의 말세우물. 아무리 많이 퍼 써도, 또 가물거나 장마가 들어도 한결같이 줄지도 늘지도 않은 채 그 깊이만큼의 정량을 유지하고 마을 사람들의 식수가 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이 지닌 전설을 자랑처럼 아끼며 부처님 받들듯 위한다고 한다.
한 스님의 신통력과 예언은 후세인들에게 신비의 전설로써 뿐 아니라 자비의 뜻과 삶의 정도를 일깨워 주고 있다.

<한국불교전설>

연관목차

624/1978
기이설화
신비의 말세 우물 지금 읽는 중
우지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