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짝속에서 나타난 석탈해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참고문헌 : 삼국유사

남해 왕 때에 가락국(駕洛國) 바다에 어떤 배가 와서 닿았다.
그 나라의 수로왕(首露王)이 신하와 백성들과 북을 치고 떠들면서 맞아들여 머물게 하고자 했으나,
배는 빨리 달아나 계림(鷄林) 동쪽 하서지촌(下西知村)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
그 때 갯가에 한 늙은 할멈이 있었는데, 이름은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 했다.
혁거세 왕의 고기잡이 할멈이었다.
배를 바라보고 말했다.
「이 바다 가운데에는 본래 바위가 없는데, 어찌된 까닭에 까치가 모여 들어 울꼬?」
배를 끌어 당겨 찾아보았다.
까치가 배위에 모여 들고 그 배 안에 궤 하나가 있었다.
길이가 20자나 되고, 넓이가 13자나 되었다.
그 배를 끌어다가 어떤 나무 숲 밀에 두고 흉한 것인가, 길한 것인가를 몰라서 하늘을 향해 고했다.
조금 있다가 궤를 열어 보니 단정한 사내아이와 일곱 가지의 보물과 노비가 그 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7일 동안이나 대접했더니 이에 사내아이는 말했다.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이오. 나라에는 일찍이 28 용왕이 있었소.
모두 사람의 태(胎)에서 났으며, 5,6세 때부터 왕위에 올라 만민을 가르쳐 성명(性命)을 바르게 했소.
8품(八品)의 성골(姓骨)이 있었으나 선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소.
그 때 우리 부왕 함달파(含達婆) 가적녀국(積女國)의 왕녀를 맞아서 왕을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기도하여 아들을 구했더니 7년 후에 알 한 개를 낳았소.
이에 대왕이 여러 신하를 모아서 묻기를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일은 고금에 없는 일이니,
아마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 하시고 이에 궤를 만들어 나를 그 속에 넣고,
일곱 가지 보물과 종들까지 배 안에 띄우면서, 인연 있는 곳에 닿는 대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라
축원했소.
문득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여 이곳으로 왔소.」
말을 마치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위에 올라가서 돌무덤을 만들었다.
그 곳에 7일 동안 머무르면서 성중에 살 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마치 초생달 같은 한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살 만한 곳 이었다.
이에 내려와서 그 곳을 찾으니 곧 호공(弧公)의 집이었다.
이에 간사한 꾀를 써서 숫돌과 숯을 몰래 그 곁에 묻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그 집 문 앞에 가서 말했다. 「이것은 우리 조상 때의 집이다.」
호공은 그렇지 않다 하고, 서로 다투었으나, 결단하지 못해서 이에 관가에 고했다.
관가에서는 동자에게 물었다.
「무엇으로써 이것이 너의 집임을 증거로서 대겠느냐?」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었는데, 잠시 이웃고을에 나간 동안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땅을 파면 알 것 입니다.」
과연 숯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이에 그 집을 빼앗아 살게 되었다.
이 때 남해왕은 탈해(脫解)가 지혜 있는 사람임을 알고 맏 공주로서 아내를 삼게 하니, 이가 아니(阿尼)부인이었다.
하루는 토해(吐解=脫解)가 동악(東岳)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인을 시켜 물을 구해 오라 했다.
하인이 물을 떠가지고 오다가 길에서 먼저 마시고 탈해를 드리려 했다.
그러나 물그릇이 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탈해가 이로 인해 꾸짖으니 하인은 맹세했다.
「이 후에는 가까운 곳이든지 감히 먼저 물을 마시지 않겠나이다.」
그제야 물그릇이 입에서 떨어졌다.
이후 하인은 탈해를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못했다.
지금 동악(東岳)산 속에 우물 하나가 있으며 세간에서 요내정(遼乃井)이라 하는데 이것이 그 우물이다.
노례왕이 세상을 떠나니 광무제(光武帝) 중원(中元) 2년 정사(57) 6월 탈해는 왕위에 올랐다.
옛날 내 집이라 해서 남의 집을 빼앗은 까닭으로 성을 석(昔)씨라 했는데, 어떤 이는 까치(작)씨라 했고 궤를 열게 되었으므로 작자에 조(鳥)를 떼어버린 성을 석(昔)써라 했고 궤를 열고 알을 벗고서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탈해라 했다 한다.
왕위에 있는 지 23년만인 건초(建初) 4년 기묘(79)에 세상을 떠났다.
소천구(梳川丘)속에 장사지냈더니 그 후에 신(神)의 명령이 있기를,『내 뼈를 조심해 묻으라』 했다 한다.
파내어 보니 그 두골(頭骨)의 둘레는 3자 2치나 되고, 신골(身骨)의 길이는 9자7치나 되고, 이는 엉키어 뭉쳐서 하나가된 듯하고, 골절(骨節)은 모두 연이어 맺어져 있었으니, 이른 바 천하에서 짝이 없는 역사(力士)의 골격이었다.
뼈를 부수어 소상(塑像)을 만들어 대궐 안에 안치 했더니 신(神)이 또 일렀다.
『내 뼈를 동악에 안치하라.』
그러므로 그 곳에 모시게 했다.

<三國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