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은 불과 10년

사람사는 세상은 불과 10년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기이설화

• 주제 : 기이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육도집경

고오리왕의 나라에 스와칸이라고 하는 큰 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둘레가 五백 六○리, 뿌리의 넓이가 八백 四○리, 높이 四천리, 가지가 뻗어나간 넓이가 二천리였다 하는 대단히 큰 나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나무는 자연히 五면을 이루고 있어서, 一면의 과실은 왕이나 궁인의 음식물이 되었고, 二면은 백관, 三면은 백성, 四면은 스님이나 도인, 五면은 조수의 음식물이었다.
과실은 두말 들이 술통만한 크기였고, 단 맛은 꿀과 같았다. 달리 망을 보는 자도 없었으며 해치는 자도 없었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 열매를 먹고 모두 八만 四천세의 수명을 누렸다.
그러나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대소의 편리, 애욕과 식욕, 나이 들어 몸이 약해지는 아홉 가지의 질병을 면할 수는 없었다. 여자는 五백세가 되면 집을 나와 시집을 갔다.
그 나라의 장자 아리넨미는 재산은 무진장하게 있었으나, 인간의 수명은 대단히 짧고,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는 자 없으며, 재산도 사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깨닫고 이 세상의 즐거움이라는 것도 보시를 해서 빈곤한 자를 구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고 하고, 스스로 집을 버리고 가사를 걸치고 스님이 되어, 현자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율을 지키고, 청정의 행자가 되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라서 스님이 되었고 그 교화에 따랐다. 그래서 아리넨미는 설법하면서 말하기를,
『사람의 명이란 짧은 것이며, 사람은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서 멍하니 살고 있다. 정말로 무상한 것이나 태어나면 죽는다. 상주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이 몸을 버려서 후생을 위해 불쌍히 여기게 하는 것이 좋다. 사람의 명이 흘러가는 빠름이란, 예를 든다면 아침 이슬이 풀잎에 잠깐 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땅에 떨어져서 없어지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수면에 떨어져 일어나는 물방울이 이내 없어지는 빠름, 번개불이 번쩍하다가 즉시 없어지는 것과 같은 빠름, 숙련된 베짜는 여자의 줄실을 짜들어가는 실이 즉시 없어지는 빠름, 어떠한 예를 든다고 해도 사람의 명이 다하는 빠름에는 비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가 뜨고 밤이 올 때마다 이렇게 해서 소모되어 가는 것이다. 근심은 많고 고뇌는 무겁다. 어찌 오래 살도록 바라겠는가. 도살장으로 향하는 양의 한 발자국과 다름이 없다.
고산(高山)의 물이 화살처럼 내려감과 동시에 우리들의 명은 낮이나 밤이나 과거로 과거로 흘러가는 것이다. 빨리 정도(正道)를 봉해서 후생의 안락을 얻지 않으면 안된다.』
그의 가르침은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퍼져서 저마다 정토로 돌아갔다.
이것은 석존의 과거에 있어서 아리넨미 장자로서의 수행이었다. 이것을 설법하고 나서 석가님은 다시 말했다.
『八만 四천 세의 장수를 누리는 세상에서도 아리넨미 장자의 무상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았다. 하물며 지금은 사람의 수명은 백세에 불과하다. 백세에 달하지 않는 것조차 많은데, 백세는 봄과 여름과 겨울과의 三시로 나누어서 三백의 시로 바뀐다. 三시는 四개월로 나누어져 있으므로 천二백 개월씩이다.
날로 따져 보면 三만 六천일, 봄의 一만 二천 일과 여름의 一만 二천 일과 겨울의 一만 二천 일이 일생이다. 백세를 사는 동안에 하루에 두 번씩 밥을 먹는다면, 七만 二천번 먹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봄, 여름, 겨울의 三시에는 각각 二만 四천번씩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어린 아이 때, 젖을 마시고 밥을 먹지 않는 것, 일이나 바빠서 먹지 않는 것도, 혹은 질병, 혹은 화 때문에, 혹은 수행하는 동안, 빈곤으로 이해서 먹지 못했던 때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백세를 사는 동안에 잠을 자는 시간이 五○년, 어린 아이 시절이 一○년, 병에 걸려서 一○년, 자기 일이나 다른 일로 걱정하는 동안의 二○년을 제하고 보면, 자기의 진실된 시간은 아주 적은 나머지 一○년에 불과하다. 어리벙벙하게 보내는 인간의 일생은 정말로 짧은 것이 아닌가.』
수행자(修行者)들은 부처님이 사람의 수명, 년, 월, 일, 음식 등에 대해서 설법하는 것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정말로 영험(靈驗)이 확실한 이야기였다.
<六度集經第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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