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밑의 귀신과 동침한 채선생

다리밑의 귀신과 동침한 채선생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기이설화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참고문헌 : 조선의 귀신

훈련원 가까이에 살고 있었던 채모라는 한 유생이 어느 날 저녁 무렵 산책을 나갔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달빛이 뿌옇게 동쪽 구름 사이로 비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눈앞의 정경도 분명하지 않은 저녁 무렵이었는데 저 편에 웬 부인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잠시 그 부인을 주시했는데 여자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서서히 걸음을 그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한눈에 반해 버릴 만큼 절세미녀였다.
남자는 온갖 추파를 보내면서 떨리는 손으로 소매자락을 당겨 보았다.
그러자 여자는 별로 싫은 기색이 아닌 모양이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남자는 손을 여자의 어깨에 올려놓으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렇게 실례하는 나의 마음을 부디 헤아려 주기를 바라오.>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수줍은 듯 목소리도 나지막하게
<어떤 분인지는 모르오나 그와 같은 정중한 말씀을 들어서 저도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만일 신첩과 같은 불초한 자를 거두어 주실 의향이 계시면 저의 집으로 오시지 않겠습니까? > 하였다.
남자는 기뻤다.
그리고
<그대의 말을 정말 따르고 싶소마는 당신을 보니 어느 집안의 따님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분명 훌륭한 가문의 규수일 것 같은데 저와 같은 미천한 자에게는 과분한 상대이오. 만약 그대가 나를 받아 주면 정말 더 바랄 것이 없겠소.>
라고 했다.
그러자 다시 여인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러한 심려는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황공하올 뿐입니다. 자, 그럼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고 해서 어서 저의 집에 드시지요> 라고 권하였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잠시 걸어 대궐과 같은 큰 집 대문에 당도했다.
여인이 먼저 들어가더니 잠시 있다 한 소녀가 문 앞으로 나타나 남자를 안내하여 어느 안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먼저 들어간 여인이 함박 웃음을 머금으면서 남자를 맞이했다.
이윽고 산해진미와 향기가 그윽한 술이 들어왔고 음식을 들고 술을 마시기를 몇 차례나 했을 때 여인은 조용히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일찍이 부모를 여윈 데다가 남편마저 잃어버린 과부에다 날마다 춘하추동 눈물로 긴 밤을 지샌다는 것이였다.
그런데 오늘 몸종 하나를 데리고 외출을 하였는데 도중에 미처 날뛰는 마차를 만나 그것을 피하려고 길옆으로 숨었는데 어찌된 셈인지 몸종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몸종이오기를 기다려 보았으나, 오지는 않고 해도 저물어 가서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하고 안절부절해 있었을 때 채모를 만나 따뜻한 말을 듣고 굉장히 감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채모도 싫은 기색이 아니었기 때문에 꼭 장차 오랫동안 채모의 측실로서 있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 같은 이야기를 들은 채모는 꿈이라도 꾸는 듯이 느꼈었고 자기와 같이 복 받은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밤도 서서히 깊어갔다.
몸종이 채모의 의관을 받아 가지런히 챙겨 놓고 이불을 깔고 등불을 켜놓은 다음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채모와 부인은 규방에서 호젓하게 부부의 정을 나눌 수가 있었다.
새벽녘의 종소리가 멀리 들리고 새벽이었지만 지난밤의 달콤한 사랑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무섭게 내리쳐 채모의 귀가 멀어질 듯했다.
벌떡 일어나 머리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절세미인과 함께 누워 있어야 할 그는 다리 밀에서 돌을 베개로 삼고 거적을 이불로 덮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주위에는 악취가 코를 찌를 듯이 나는 오물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천둥번개 소리는 지금 막 다리 위를 장작을 싣고 지나가는 두 대의 수레소리이었다.
채모는 당황하여 몸을 떨면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그는 아연자실 하였고 그와 마주 손을 잡고 운우의정을 나누었던 미녀의 생각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심신이 점차 허약해져 갔다.
이는 필시 요귀의 장난 이라는 것을 알고 백방으로 의원과 약으로 치료를 하고 또 기도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효험이 없었다.
나중에는 제문을 바치고 기도를 드림으로써 잠시 그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었다 한다.

<朝鮮의 鬼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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