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달국사의 인면창

오달국사의 인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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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인과
• 국가 : 중국
• 시대 : 당나라

중국 당나라 때 지현(智顯)이란 중이 있었다.
그는 계행(戒行)이 청정하고 정혜(定慧)를 남달리 닦아서 대중 가운데 뛰어났다.
항상 마음이 자비하여 화를 내지 아니하므로 대중 스님들은 그를 추천하여 간병(看病) 일을 보게 하였다. 간병이란 환자를 간호하는 직무이다.
하루는 어디서 성질이 포악하고 인물이 괴상한 환자가 왔는데 시키는 대로 듣지 아니하면 마구 때리고 야단을 쳤다.
몸에는 문둥병이 만성이 되어 사방이 곪아 터지고 피와 고름이 흘러서 코를 두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옆에 불러 앉혀 놓고 떠나지를 못하게 하였다.
지현은 생각하기를
「이 사람의 병이 만성이 되어 신경질을 더욱 부리니 내 그를 더욱 어여삐 여기고 어떻게든지 낫도록 해주어야겠다.」
하고 더욱 멀고 가까운 데를 가리지 않고 약만 있다면 가서 구해왔다.
때로는 밥을 짓고, 죽을 쑤고, 약을 다리고 하여 그에게 갔다 바치면 이 노장은 밥그릇을 팽개치기도 하고 죽 그릇을 내던지기도 하며, 또 약이 쓰다고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현은 그런 뜨거운 죽 그릇이나 밥그릇을 뒤집어 쓰고도 화 한번 내지 않고 극진히 간호하였는데 그 간호의 덕택으로였던지 그렇게 중한 문둥병이 3개월 만에 완치되었다.
그도 사람인지라 떠나는 마당에 있어서는 지현을 극구 칭찬하며
「가히 현세의 보살이다. 복을 짓는 가운데는 간병(看病)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데 네 가지 정성으로 간호하여 내 병이 이렇게 나았으니 네 나이 40이 되면 나라의 국사로 뽑혀 천왕의 존경을 받으리라.
만일그때 천하제일의 음식을 먹고 천하제일의 의복을 입어 황제와 나란히 봉연을 타고 돌아다닌다고 마음에 허영을 놓지 아니하면 크게 고통 받는 일이 있으리라.
그 때에는 꼭 나를 찾아야 할 것이니 잊지 말아라.」
하였다.
그러나 지현은,
「스님은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나라의 국사는 다 무엇이며 천하일미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욕을 버리고 출가수도 하는 것은 견성성불을 하여 무량중생을 제도코자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니 설사 그러한 지위가 나에게 부여된다 하더라도 초근목과(草根木果)와 현순백결(顯順白潔)의 누더기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허어, 그 사람 장담은― 이제 두고 보면 알게 아닌가.」
「그렇다면 스님, 스님의 주소나 알아야 찾아가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참 나도 망령이로구나. 나는 다룡산 두 소나무 아래 영지 옆에서 산다. 그리로 오면 만날 수 있다.」
「감사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으면 꼭 찾아 뵙겠사오니 부디 버리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걱정 말고 너무 늦지 않게 하여라.」
이렇게 다짐한 노장과 지현은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과연 그는 40세가 되었을 때 국사가 되었다.
나라에서는 훌륭한 도인을 찾아 나라의 스승으로 모시고자 천하총림에 조서를 내렸는데 이구동성으로 지현스님을 추천하니 그가 결국 국사 자리에 앉게 되었다.
지현대사는 몇 번이나 사양을 하고 거절하였으나 그는 어찌할 수 없었다.
하는 수없이 왕명을 받고 오달조사(悟達祖師)라는 호를 받으니 금빛 찬란한 비단장삼에 금란가사가 몸에 둘러지고 천하에 제일가는 음식이 입을 떠나지 않고 천하 인민이 부러워하는 만조백관이 그의 앞에서는 꼼짝 달싹도 못하고, 또 왕은 항상 그를 자기와 똑같은 봉연에 태우고 정치를 자문하니 세상에 그보다 더 높은 사람은 없었다.
오달조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래서 지난날의 계행은 간 곳이 없고 40여년 동안 길들여온 오후불식(午後不食)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하게도 넓적다리가 쓰리고 아팠다.
만져보니 난데없는 혹이 하나 났는데 시시각각으로 커져 사람의 머리만 하였다.
그런데 이상스런 것은 그 혹에는 머리도 나고 코도 있고 눈도 생겨 필시 사람의 얼굴과 꼭 같았다.
걸음을 걸으면 씻기고 아파 견딜 수가 없으므로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일국의 국사로서 항상 자비의 상호를 떠나지 않았으므로 그가 국사에 추대된 것인데 국사가 되어 얼굴을 찌푸리고 험상궂은 상호로 만조백관을 대하게되니 세상에 그 보다 더 괴롭고 아픈 일은 없었다.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아도 낫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하게도 그 아픈 곳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밤중이 되어 가만히 옷을 벗고 들여다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사람의 얼굴과 꼭 같은 창(瘡)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인면창(人面瘡)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인면창이 말했다.
「오달아, 너만 그 좋은 음식을 먹지 말고 나도 좀 다오. 그리고 걸음을 걸을 때는 제발 조심조심 걸어 나를 좀 아프지 않게 해다오. 네가 다리를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하면 억지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나는 얼굴이 씻겨 아파 견딜 수가 없구나.」
하였다.
오달은 깜짝 놀라,
「네가 도대체 누군인데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거냐? 도대체 말이나 해 보아라.」
그러나 그는 입을 꼭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오달조사는 왈칵 소름이 끼쳤다. 창피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명색이 한 나라의 국사로서 이러한 병을 가졌다면 얼마나 추잡하고 창피스런 일인가.
오달은 금시 부귀도 영화도 다 싫어지고 임금님을 대하는 것도 만조백관을 대하는 것도, 천하총림의 대덕들을 대하는 것도 다 싫어지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어느 날 밤 몇 년 전에 일러 주시고 가던 그 노장 스님이 생각났다.
「네 나이 40이 되면 나라의 국사로 뽑혀 천하의 존경을 받고 천하제일의 음식을 먹고 천하제일의 의복을 입어 황제와 나란히 봉연을 타고 다니리라―. 그러나 마음에 허영을 놓지 아니하면 크게 고통 받는 일이 있으리니 그 때는 마땅히 나를 찾아오라. 나는 다룡산 두 소나무 아래 영지 옆에 산다.」
이 말이 생각이 나 오달조사는 부귀고 영화고 다 팽개치고 야반도주를 기도하였다.
다룡산 두 소나무 사이에 이르니 안개가 자욱히 끼었는데 어디서 이상한 풍경 소리가 들렸다.
가서 보니 한간 정자에 바로 그때 그 노장이 앉아,
「오늘 네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노라.」
하였다.
「스님, 이것 좀, 이것 좀 고쳐 주십시오. 이 놈이 나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그래, 내 이르지 않았더냐― 그런데 너는 설사 국사가 된다 하더라도 초근목과와 현순백결의 누더기를 떠나지 않는다고 하였었지, 그것은 바로 너의 원수다. 어서 저 영지로 내려가 말끔히 씻어 버려라.」
그 노장의 이 같은 말을 듣고 오달조사가영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인명창이 일러 가로되,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좀 있다.」
「무슨 말이냐?」
「네가 나를 알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알 수 있겠느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옛날 한 나라 경제(景帝)때 재상 착조이다.
네가 오나라의 재상인 원익(imagefont益)으로 있을 때 우리나라의 사신으로 왔다가 무슨 오해를 가졌던지 경제임금께 참소하여 나를 무고히 죽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이 철천지 원한이 되어 기회만 있으면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그런데 네가 세세생생에 중이 되어 계행을 청정히 지니고 마음 닦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좀체 틈을 얻지 못하였더니 마침 네가 국사가 되어 계행이 해이해지고 수도에 구멍이나 모든 선신이 너를 버리고 떠나가는 바람에 내 너를 괴롭히려고 인면창으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너는 불심이 장하여 많은 사람을 구제해 온 까닭으로 오늘 저 스님의 은혜를 입어 네 병을 낫게 되었으니, 이 못은 해관수(解寬水)라는 신천(神泉)으로 한번 씻으면 만병이 통치되고 묵은 원한이 함께 풀어지는 까닭이다.
저 스님은 말세에 화수로 다룡산에 계시는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이니 보통 사람이 아니니라.
이러한 성현의 가피를 입어 너와 내가 세세에 원수를 풀고 참 도를 구해 나아가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냐. 그럼 잘 있거라!」
하고 그 인면창은 감쪽같이 스며들었다.
오달국사는 그 동안의 해이된 계행, 거만한 마음을 참회하고 그 물에 목욕하니 병은 간곳이 없고 몸은 날아갈듯 신천지를 얻은 것 같았다.
해 관수에서 나와 아까 만났던 빈두로존자를 뵙고자 그 곳을 찾았더니 소나무는 여전한데 정자와 사람은 간 곳이 없었다. 과연 성현의 영적(靈跡)임에 분명했다.
오달조사는 이로부터 곧 나라에 사표를 쓰고 그 곳에 안주하여 자비수참(慈悲水懺)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행하니 만수행인(萬修行人)의 본이 되고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찬탄한바 되었다.

<慈悲水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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