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지 7일만에 환생환 백부사

죽은지 7일만에 환생환 백부사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기이설화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시대 : 조선
• 지역 : 경기도
• 참고문헌 : 조계사간영험록

근세조선 (중종:中宗) 때 서울 남산골에 사는 백광산(白光山)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책만 읽을 줄 알았지 도무지 생업엔 취미가 없어 집이 가난하기 비할 데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부인 민씨는 시골 친정에 다니며 구걸을 하여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
그런데 민씨 부인은 일찍부터 그의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며 불교를 신봉하였으므로 출가하여서도 절에는 가지 못해도 절에 가는 것 이상으로 기도도 하고 염불도하고 참선도 하였다.
그는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할 매마다 절에 가지 못하는 것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서원 하였다.
「부처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이 벼슬만 하게 되면 꼭 잊지 않고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스님들도 공양하며 또 많은 불사를 하여 절에 필요한 것을 성심껏 보시 하겠습니다.」
그런데 민씨 부인의 정성이 헛되지 않아서였던지 이듬해 남편 백광산이 시험에 응시하여 급제, 강원도
울진부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얼마나 기쁜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그같이 의기양양하고 화기등등한 울진 부사가부임한 지 3일 만에 이렇다 할 병도 없이 그대로 죽고 말았다.
부사를 새로 맞은 6방관속은 물론 그의 부인의 애통함은 또한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3일을 두고 울고 또 울다가 북문 밖에 장지를 정하였다는 말을 듣고 사 비로소 눈물을 그친 민씨 부인은상가에 모여 있는 여러 지방장관들에게 물었다.
「이 고을엔 절이 없느냐 ? 절이 있다면 특히 영험하신 절을 하나 일러라.」
「예, 불영사(佛影寺)란 유명한 절이 있는데 그 절 탑 앞에 모셔진 부처님이 특히 영험 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사또의 상여를 그 곳으로 모시라.」
「아니 절이란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청해 극락세계로 천도하는 곳이라 하지만 시체를 묻는 곳은 아닌 줄로 압니다.」하고 이방이 말했다.
「이방, 나도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내 남편은 내가 처리할 터이니 여러말 말고 시체나 그리로 옮기라.」
관속들은 할말을 잊고 있다가 재촉하는 사또 부인의 말을 듣고 하는 수 없이 그 절 탑 앞으로 상여를 메고 갔다.
부인은 상여속의 관을 꺼내어 탑 앞에 올려 놓고 불철주야 3일을 기도했다.
「부처님, 우리 백부사를 다시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가난하게 살던 것을 부처님의 영험으로 부사를 시켜 주시었으니 이제 부처님은 그를 살리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이대로 헤어진다면 너무나도 억울해서 살 수 없사오니 다시 한번 명을 주시되 5년도 좋고 10년도 좋습니다.
그러나 3일은 너무나도 짧습니다. 옛날 이산용(李山龍)은 지옥에까지 갔다가도 살아오고 양나라 유시(柳時)와 수나라 조문객(趙文客)은 죽은 지 6, 7일 만에 되살아났으니 부처님의 가피력이면 어찌 못 할일 이 있겠습니까? 이 같은 애절한 소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스님들도 그만 감화가 되어 목탁을 들고 나와 불철주야 3일을 두들겼다.
밤은 깊었다.
달은 밝고 서릿발이 내리는 차가운 가을밤이었는데 홀연히 그 영구 사이에서 머리를 풀고 입술이 붉은 여자 귀신이 나타나,
「나는 저이와 10생에 원한을 맺은 원수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세상의 낙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하려 하였더니 저 부인의 간절한 소망과 여러 스님들의 애절한 독경으로 나는 10생의 원결을 풀고 이제 천상락을 받아 가노라. 다시는 복수하지 않으리라.」
하고 하늘로 둥둥 떠서 연기같이 사라졌다.
한편 놀라고 한편 겁이 난 모든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래 관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관이 gms들리기 시작했다.
민씨 부인은 미친 듯이 달려들며 줄을 끄르고 관을 떼어 수의를 헤치니 백부사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관속들은 부사를 업어 곧 절방으로 모셔 들이니 부사는 3일 만에 힘을 얻어 기동했다.
이 소식이 강원 감사에게 알려지자 곧 강원 감사는 나라에 장계하여 중종 임금이 듣고「참으로 부처님의 도력은 부사의(不思議)하도다.」
하시고 곧 붓과 먹을 가져오라 하여 어필로 불영사의 현판을 환생전(還生殿)이라 쓰고 큰 방의 현판을 환희요(獸喜察)라 고쳐 써 보내고 길이 기념하도록 했다.
그리고 백부사는 일년이 채 못 되어 강원부사로 영전하였다가 얼마 아니 되어 중앙으로 불러들여 내직을 맡게 되었다.
민씨 부인은 이로 인해 불영사에 백여석의 불량답(佛量畓)을 사들이고 그 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수시로 헌공하였다.

<暫溪寺刊 靈驗錄>

연관목차

604/1978
기이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