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가 걷고 장님이 눈을 뜨다

앉은뱅이가 걷고 장님이 눈을 뜨다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기이설화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시대 : 고려
• 지역 : 강원도
• 참고문헌 : 한국지명연혁고

고려 제 7대 목종(稼宗)때 일이다.
강원도 철원 보개산 심원사(深源寺)라는 절에서 대종불사(大鍾佛事)를 하게 되어 경향각지로 다니면서 스님들이 시주를 걷고 있었다.
각 고을의 부인네들은 쌀 돈뿐만 아니라 깨어진 가마솥과 주발대접과 젓가락 부러진것 등을 찾아내서 열심히 시주하였다.
이 때 보개산 및 대광리에 사는 이덕기(李德基)라는 장님과 박춘식(朴春植)이라는 앉은뱅이가 있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죽마고우였는데 덕기는 열병을 않다가 열이 과해 눈이 멀었고 춘식은 소아마비로 다리가 오그라져 앉은뱅이가 되었다.
그들은 항상 자리에 모이기만 하면 신세 한탄을 하였다.
「무슨 죄가 많아서 우리는 이런 몸을 받았을까?」
「남 못할 일을 많이 했겠지~ 금생에 받는 것을 보면 전생 업을 알 수 있고 금생에 하는 짓을 보면 내생의 업을 알 수 있다 하지 않던가?」
「그래, 우리는 전생에 죄가 많아 이 지경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 금생에 좋은 일이나 많이 하세.」
하고 서로 위로하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그들은 남을 못되게 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고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 갔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스님이,
「여보시오, 시주님네. 적선공덕 많이 하소. 한 물건 시주하면 만 배가 생기는 일, 부처님 가피로 모든 재앙 소멸하고 현생에 복을 얻어 수명장수 이루소서.」
외치고 지나갔다.
덕기가 듣고,
「스님, 우리 같이 죄 많은 사람들도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고 시주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있구말구요.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을 내 자식과 같이 대하시므로 병신자식 둔 부모가 그 병신을 더욱 불쌍히 여기듯이 부처님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그게 들림 없습니까? 춘식이가 물었다.」
「부처님은 거짓 말씀을 안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여리고 희박하여 의심하므로 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철석같이 믿고 기도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덕문대사라고 하는 이 화주승의 말씀을 들은 덕기와 춘식은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고 다리가 곧장 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하여 돈도 없고 팔도 없고 또 보탤 만한 쇠붙이도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그들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너나 내나 전생에 죄를 짓고 불구자가 된 것도 원통하지만 박복중생이라 오늘날에 시주할 물건 하나가 없으니 슬프지 않는가.
이렇게 앉아서 궁상을 떨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저 화주승과 같이 길거리에 나서 시주를 걷도록 하자.」
그러나 다리가 오그라져 펴지 못하는 춘식은,
「말은 옳은 말 이다만, 너는 앞을 보지 못하고 나는 걸음을 걷지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그거야 좋은 방법이 있다. 두 몸이 한 몸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 너는 걸음을 걷지 못하여도 눈이 성하고 나는 보지 못하여도 다리가 성하니 내가 너를 업고 다니면 네가 가르쳐 주는 대로 다녀, 저 화주승과 같이 문전구걸을 하면 곧 시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니?」
「정말 그렇구나, 참 미련하기도 하지―」
하고 춘식은 스스로 그 대갈통을 한번 두들겨 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렇게 해서 구걸을 하기 3년이 되었다.
방방곡곡, 산전수전을 다 지나 쇠붙이를 모아 화주승에게 바치니 화주승도 감격하여 그들을 더욱 격려하고 감싸주었다.
종은 이루어지고 절은 중수되어 모년 모월 모일에 중수회향재(重修回向齋)와 대종(大鍾)준공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평지도 아닌 태산준령을 넘어 보개산 심원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연천으로 가자면 계곡을 끼고 가기 때문에 고개가 없지마는 물을 건널 수 없었으므로 대광리에서 바로 태산준령을 넘어 오르기로 하였다.
산에 오르니 재는 가파르고 힘은 모자라 몸에서는 구슬 같은 땀방울이 떨어지고 입에서는 불꽃처럼 달구어진 숨결이 가슴 턱을 쿡쿡 막았다.
그러나 화주승이 가르쳐준 나무불(南無佛) 나무법(南無法) 나무승(南無僧) 나무대자비 대관세음보살(南無大慈悲大觀世音菩薩)을 한 없이 부르며 간신히 그 산 마루에 올랐다.
그 때 춘식이가 외쳤다.
「저기 저 부처님을 보아라.」
그리고 그는 덕기를 등허리에서 내려 곧 그 부처님 곁으로 뛰어가려는 듯 몸부림을 쳤다.
순간 자기도 모르게 두 다리가 쪽 펴졌다.
그 때 덕기가
「어디. 부처님이 어디 있어~」
하고 두 눈을 부비며 크게 뜨자 두 눈이 죽 찢어지면서 그만 눈이 뜨이고 말았다.
부처님은 허공중인 오색구름에 싸여 둥실둥실 큰 빛(大光)을 그들이 사는 마을에 쏟으며 하늘높이 올라갔다.
덕기와 춘식이는 날이 밝도록 그 부처님께 절하며 서로 붙들고 울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 그 큰채(大峙嶺)를 부처님을 뵌 고개라 하여 불견령(佛見嶺)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韓國地名沿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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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1978
기이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