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가 문수동자에게 산삼을 얻어먹고 고자대감이 수염이 나다

왕자가 문수동자에게 산삼을 얻어먹고 고자대감이 수염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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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 기이
• 국가 : 중국
• 시대 : 북제
• 참고문헌 : 류겸지의화엄경소초

중국 북제(北齋) 대화년중(大和年中)에 궁중에 유험지(劉謙之)라는 내관이 있었는데 그는 항상 왕자를 시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의 왕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였다.
그 때의 의술로써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중병환자였다.
왕자로 태어나서 호사스러운 궁중에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리고는 있으나 한 가지도 마음에 흡족한 것이 없고 만날 짜증만 계속 났다 .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와도 먹을 수 없으니 그림의 떡이요, 아무리 어여쁜 궁녀와 아내가 서로 번갈아 몸을 떠나지 않아도 둘 가운데 허수아비와 같으니 말이다.
「내 이제 무슨 전생의 복분으로 이런 호사를 얻고, 내 이제 무슨 죄업으로 이런 고충을 받는가?」
항상 마음속으로 이렇게 비관하며 나날을 보내던 태자가 어쩌다가 불경(佛經)을 대하면서부터는 조금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를 반성해 마지않았다.
하루는 화엄경(華嚴經)을 읽다가 문수보살의 지혜와 신통, 자비의 공덕이 유독 뛰어나 있음을 감탄하고 문수보살 친견하기를 원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와서 말하기를,
「청량산(淸凉山)으로 가시면 문수보살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예로부터 청량산에는 일만 문수가 계신다 하였은즉, 거기에 가서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시면 단 한분의 문수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자가 이 말을 듣고 더욱 신심이 나서 청량산으로 떠나고자 하니 부인과 모든 궁중 사람들이 말리고 또 말렸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먼 행차를 하시다가 병이나 더 도지게 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인명은 제천이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상관할 게 아니다. 내 죽기 전에 뛰어난 성인이나 한번 친견하고 죽는다면 한이 없겠다.」
하고 굳이 고집을 부리고 길을 떠났다.
산은 깊고 물은 밝아 마치 하늘 신선이 노는 선경과도 같았다.
왕자는 매우 마음이 기뻤다.
「마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와 같구나. 천산만수(千山萬樹)는 칠보향수(七寶香樹)와 같고 골골이 메아리치는 각절 암자의 종소리는 마치 하늘 풍악과 같으며 법당에서 울려나오는 목탁소리는 무명 장악을 경각하는 비로자나(毘巖遮那)의 법음(法音)과 같도다.」
가사장삼에 백팔염주를 걸고 법당에 들어가 아침 저녁으로 염불을 하고 경전을 읽고 있는 스님들을 바라보곤,
「마치 영산회상(靈山會上)의 불보살이 함께 모인 것 같다.」
하여 환희를 금치 못했다.
왕자는 그 기분만으로도 속병이 다 나은 것 같았다.
그리하여 왕자는 주지스님께 부탁하여 매일 네 차례씩 기도드리며,
「문수보살님, 문수보살님을 뵈오려 이 박복한 중생이 먼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찾아 왔습니다. 진자(眞慈), 버리심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이 몸이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보살님의 참 모습을 보고 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로 하여금 당신의 세계에 가 함께 살게 해 주십시오.이러한 몸, 이러한 병을 가지고서는 이 세상에 더 살기가 싫어 졌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유겸지도 눈물을 흘리며,
「보살님, 하루속히 왕자의 병이 쾌차 되어 만백성이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임금님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발원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해질 무렵, 왕자가 단신 산천으로 경치를 구경하고자 뒷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큰 나무 밑에 당도하니 나이15, 6세밖에 안되어 보이는 소년 하나가 망태기를 앞에 놓고 쉬고 있었다.
「너 어디 사는 누구냐?」
「이 산안에 사는 만수사리(曼殊舍利)입니다」
「무엇 하러 다니느냐?」
「약초를 캐러 다닙니다.」
「무슨 약초를 캐느냐?」
「산삼도 캐고 백복령도 캡니다.」
「산삼? 산삼이란 만병통치약이 아니냐? 십년 공부하여 도를 얻기보다도 어렵다는 말을 들었는데 산삼을 그렇게 쉽사리 캘 수 있느냐?」
「예, 이 산에는 다른 데와 달라서 그런 것 캐기가 도라지나 더덕 캐기보다 쉽습니다.」
「그럼 그 망태기 속에는 산삼이 들어 있느냐?」
「예, 들었습니다.」
「어디 좀 보자.」
하고 왕자가 들여다보자 과연 연근만큼씩 한 산삼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잡수시고 싶으면 아무거나 하나 골라 잡수세요.」
「그 녀석 돈도 안주고 먹어 어느 것을 먹을까? 나는 잘 모르겠구나. 네가 하나 골라 주렴.」하니, 동자가 망태기를 한번 휘젓더니「이것이 좋습니다.」
하고 내놓았다.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매우 향기가 진동하고 색깔이 누르스름했다.
아무래도 그냥 먹기가 미안해.
「얘야, 내가 소풍 나왔다 너를 만났으니 절로 가자. 내 네가 요구하는 대로 값을 주리라.」
그러나 그 애는 굳이 그 자리에서 먹으라고 권했다.
「돈은 천천히 받겠으니 우선 먼저 잡수세요, 산삼은 산에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먼저 먹고 돈은 절에 가서 주마.」하고 즉즉 씹어 삼켰다.
그러고 절로 향했다. 그런데 뒤에 따라오던 애가 절 문 앞에 이르러서는 온데간데없었다.
「만수사리야, 만수사리야~」
목이 터져라 불러 보았으니 인홀불견(人忽不見), 먼 산에 메아리만 들려왔다.
그 때 절에서 스님들이 왕자가 만수사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왔다.
「만수사리라니~ 누구를 찾으시는 것입니까, 왕자님.」
왕자는 그동안의 사실을 소상히 일렀다.
주지스님이 듣고 있다가,
「그는 사람이 아니라 보살님의 화신입니다 만수사리는 문수사리의 이음(異音)입니다.
이제 왕자께서는 보살님을 친견하고 또 신약을 얻어 잡수셨으니 묵은 병은 구름 걷히듯 다 나을 것입니다.」하였다.
왕자는 그때에 무릎을 치며,
「사람이 이렇게 어리석구나 보살님을 보고도 보살님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니 부끄럽도다.」
하며 안타까워하였다.
절로 들어온 왕자는 그 길로 잠이 들어 하루 반 만에 깨어났다.
산삼에 도취되어 깊은 잠에 빠졌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태자는 전에 없는 기분을 보고,
「이제 내 병은 다 나았다. 어서 궁으로 돌아가자.」
하였다.
이렇게 해서 병을 고친 왕자는 곧 건강한 몸으로 왕위에 올라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그래서 전날 시종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내관 유겸지를 여간 특대우하지 않았다.
벼슬도 높여주고 또 많은 재산을 상으로 내려 그야말로 부와 귀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귀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 귀찮았다.
옛날 왕자가 병환으로 않을 때 좋은 음식 아름다운 여자가 다 그림 가운데 떡이요, 밭 가운데 허수아비로 보이듯, 값진 보물이 있으나 쓸 곳이 없고 아름다운 여색이 있으나 다 소용없는 물건이었다.
벼슬이 높아가고 부와 귀가 더 해가면 더해갈 수록 원망스러운 것은 자기 부모요, 천생의 업안(業緣)이었다.
아내에게 무슨 말을 하면 아내 또한 좋지 못한 언사로 그의 부모들을 원망하였다.
「영화를 누리고자 멀쩡한 자식을 병신을 만들어 내관에게 양자로 보낸 부모나 또 사위를 얻어 덕을 보고자 딸 자식을 병신에게 준 나의 부모나 모두 죄를 받아야 합니다.」
하고 짜증 섞인 언사로 자꾸 세상을 비관하였다.
「날아다니는 새들도 밤이면 잠자리에 사랑을 속삭이고 웅덩이의 송사리도 새끼를 치느라고 많은 세월을 잊고 살건만 우리는 외관(外觀)은 멀쩡하여 남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살면서도 이게 뭣이람~ 차라리 죽어 다음 생이나 잘 받도록 함이 어떨까요.」
하고 한숨짓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는 더욱 구곡간장이 찢어지는 것 같고 아랫도리가 움추려 지는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생각다 못해 왕자에게 허락을 청했다.
「사세(事勢)가 이러한즉 살아 열흘을 고통 하는 것보다는 죽어 내세를 기약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주어진 업은 억지로 회피할 수 없다. )하셨으니 죽는다고 업이 피해질 것은 아닌즉 저도 왕자님과 같이 청량산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기도나 한번 해볼까 합니다.」
「고맙소. 생각이 그러 하시다면 하루 빨리 길을 떠나시오. 부처님의 신통은 무불통지라, 어찌 유내관이라 하여 보살피지 않겠소.」
하고 위로했다.
유겸지가 산 속에 들어가 기도하기 전날이 가까워 오는 어느 날이었다.
신심이 복받쳐서 밥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며 기도하기 3·7(21)일이 되었는데 개울에 나가 세수를 하려고 허리를 꾸부리던 유내관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턱 밑에 수염이 까끌까끌 하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상도 하다. 고자도 수염이 날수 있을까?」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곧 절로 뛰어 들어오며 주지스님을 불렸다.
「주지스님.」
「아니, 내관님 음성이 어떻게 남자가 되었습니까?」놀란 것은 유내관 뿐이 아니었다.
내시의 음성은 여자와 같이 곱고 맑을 뿐 남자 같은 탁음이 나지 않는 법인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자와 같은 음성을 가쳤던 내관이 굵직한 소리로 주지스님을 불렸으니 말이다.
「주지스님, 저에게 수염이 났습니다. 어서 거울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방에 들어간 내관은 거울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명히 털이 아니라 수염이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아랫도리를 만져보니 역시 감자씨 같은 것이 그것 밑에 달려 있었다.
그는 몇 번 그것을 쓰다듬어 만지다가 그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이젠 저도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백배 천배 절을 하고 나서 단숨에 집으로 달려왔다.
부인과 부모는 더 말할 것도 없었지만 나라에서는 이 일을 크게 칭찬하여 큰 불사를 일으키고 유내관 에게도 더욱 큰 벼슬을 주었다.
내관은 이로부터 몇 년 후 두 아들과 한 딸을 낳아 단절될 뻔한 대를 잇고 바라던 모든 소원을 원만히 성취하여 모든 사람의 부러워하는바 되었다.
한편 그는 이 같은 모든 영화와 부귀, 그리고 자손만덕이 오직 부처님의 은혜에 힘입은 바라 생각하고 평생을 손에서 불서(佛書)를 놓지 않고, 불사를 계속하여 마침내 화엄경 600권서를 써 내 놓았다.
참으로 기이하고 희한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劉謙之의 華嚴經疏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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