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속에 미쳐버린 귀신

원망 속에 미쳐버린 귀신

분류 문학 > 불교설화모음 > 기이설화

• 주제 : 기이
• 국가 : 한국
• 시대 : 근현대
• 지역 : 경기도
• 참고문헌 : 속편영험설화

서울 한복판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북쪽으로 10km를 걸어가면, 삼각산 중덕에 승가사(僧伽寺)라는 절이 있다.
당년 19세의 젊은 나이에 부모에 굶주리고 또 사람에 굶주린 처녀행자가 있었다.
머리는 깎지 않았어도 먹물 옷을 입고 스님의 후보자로서 특별히 주지스님의 자비 속에 갓 20 고개를 넘으려는 김점례라는 어여쁜 아가씨가 있었다.
그 러나 그에겐 너무나도 가혹한 사바의 시련이 채 맛도 보기 전에 다가오고 있었다.
장안 부호 회장님의 어머니가 7대독자의 규수감을 구하고자 부처님께 발원하러 오는 길에 바로 그 어머님의 눈에 뜨인 것이다.
어머니께서 주지스님께 호소한다.
「스님, 우리 집안에 영광을 들어주시옵소서.」
「그 애는 매우 외로운 처녀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좋습니다.
우리 애는 두 번 장가를 들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여 모두 실패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밖에서 듣고 있던 점례는 매우 흥분했다.
「내가 시집을 간다. 부자집의 규수가 되어 자식을 낳으면 얼마가 행복할까.」
젖먹는 아이가 어머니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숲 속에서는 종달새가 비비배배 하고, 꾀꼬리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면서도 새는 볼 수 없다.
소리를 따라 숲속을 헤매고, 높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으나 끝내 새는 보지 못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한편 자기가 오늘 낮에 부처님께 마지를 가지고 갔다가 예배도중 꿈을 꾸는데 부처님의 상호가 이상스럽게 도깨비로 변하고, 나한님들과 부처님탱화가 마귀처럼 보였다.
점례는 비지땀을 흘리며 깨고 보니 한가닥 꿈이었다.
그러나 아직 세상 경험이 없는 점례로서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는 사실, 가서 자식 하나만 잘 낳아주면 그대로 귀인이 되어 그동안의 외로움을 모두 다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그 생각밖에 다른 생각이 없었다.
「점례야,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이미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신 스님이 물었다.
대답은 하지 아니했으나, 이미 부푼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핏줄이 점례의 안면을 불그스레하게 물들였다.
혼인은 쉽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혼인은 신랑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서 취한 결혼이 아니요, 어머니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여 세 번째 단행된 결혼이었다.
첫날밤은 매우 서먹서먹하였으나 점례는 성심껏 남편과 시부모를 모셨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 같아 진찰했더니 희비 쌍곡의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임신 3개월이 틀림없으나 모체의 자궁에 혹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J
「애를 제거하지 아니하면 어머니가 죽습니다.」
「수술을 하면 다음에 또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자궁전체를 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아들과 의사와 짜고
「살려 달라.」
고 애원하는 점례의 소망을 송두리 채 뿌리치고 수술을 거부했다.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는 처지
「나는 아이만 나면 죽습니다. 부처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매일 북한산을 향하여 애원하며 몸부림 했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어느덧 태아의 분만기가 다가왔다.
병원에서는 아이와 산모를 함께 살려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 아이를 분만하고 다른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점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점례는 수술을 임하기 전에 남편을 불러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여보, 나는 수술하면 그대로 죽습니다. 아이나 잘 기르셔서 가문의 뒤를 잇도록 하시고, 나는 승가사 뒷산 양지 바른쪽에 묻어 주세요. 부탁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과연 수술결과는 점례의 말과 똑 같았다.

그러나 남편과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점례의 죽음보다는 손자의 탄생에 가슴이 벅차 점례의 시신을 회사 간부 두 사람에게 맡기고 장지까지도 가지 않았다.
외로운 시체는 회사차에 실려 북한산에 오르다가, 마침 쏟아지는 소낙비 관계로 중간에 쉬고 있었는데 간부 한사람이,
「북한산은 저기 저산 아니야, 거기까지 30리가 넘는데 어떻게 하지?」
「글쎄…」
함께 간 일꾼이 걱정을 하자,
「자, 좋은 수가 있어, 사장님께서 호텔 지으려고 사 놓으신 산이 있지 않아, 얼마 안 있으면 공사가 시작되겠지만 거기까지 차가 들어가니 거기다 묻읍시다.」
일꾼들은 그것이 좋겠다하여 그 곳으로 싣고 가서 묻고 말았다.
그 후 15년, 아이는 자라 성인이 되고, 또 회사일도 잘 되어 호텔을 짓게까지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자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아이 추워, 아이 추워, 아이 추워 죽겠어요.」
분명 점례의 소리였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이라 꿈이거니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계속해서 똑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의심이 난 남편 사장님은 그때 간부를 불러 물었다.
당황한 간부는
「틀림없이 승가사 뒷산에 묻었다.」
거짓말을 해놓고. 그 무덤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호텔부지는 다이나마이트에 의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매일 도자로 그 흙을 실어내어 터를 고르고 있었다.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고 남은 뼈라도 찾아보려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그 간부도 다이나마이트의 저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늦게 사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장님은 그 때 같이 갔던 간부를 찾아 현장을 헤매다가 간부의 시체 쪽을 발견하고 화가 나서 동행자를 칼창을 들고치려 하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동행자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그대로 죽고 말았다.
사장은 그대로 미쳐버렸다.
집안은 일시에 불구덩이가 되었다.
현장에서는 흙을 실어 나르던 담부차가 점례의 시체조각을 싣고<실어진 줄도 모르고>가다가 거리에서 귀녀(鬼女)를 보고 놀라 사고를 내니, 차는 강 속으로 들어가고 운전수는 그대로 물귀신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연일 계속해서 사고가 나고 사람이 피해를 입으니 회사는 마침내 폐허가 되고 그의 할아버지까지 아파 눕게 되었다.
당황한 시어머니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했다.
굿을 보고 있던 사장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무당 관수를 내려치니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이젠 정신이 아주 없어져 부모와 자식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전일 점례를 수술했던 병원에서도 기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점례의 병을 간호하던 간호원이 점례의 혼백을 본 것이다.
「귀신났었어요, 귀신―」
그러나 누구도 곧이듣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후 두 번째 나타난 점례의 혼신은 병원 원장의 가슴 속에 깊이깊이 사무쳐 간호원과 함께 죽는 비극을 일으켰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 수술을 통해 태어난 그 아들이 이제 결혼식을 올리고 여행을 가기에 이르렀다.
신방이 꾸며진 호텔방에 난데없는 휘파람 소리가 새 며느리 귀에 들렸다.
그는 귀신처럼 호텔방을 나와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어느 초상집에 이르러 초혼 밥을 훔쳐 먹고 들어왔으나 남편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아버님께 인사드렸으나 아버지는 영영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며느리를 오히려 옛 점례로 착각하여 발작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 때 승가사 주지스님께서 내려왔다.
방에 누워 계신 시아버지를 뵙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 하였다.
「대사님, 어떻게든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참으로 잘못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깊은 뉘우침은 아무리 무서운 원한도 다 녹여낼 수 있습니다. 염불을 하십시오.」
할아버지는 주지스님이 시키는 대로 불단을 차리고 염불을 하기 시작하였다.
집안은 점점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우선 할아버지가 건강이 회복되었고 아들<옛점례의 남편>의 정신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제 점례의 혼령은 새 며느리에게 붙어 칼을 들고 그의 어머니를 저주하였다.
밤중에 이상한 소리를 듣고 손자 며느리 방 근처에 나왔다가 칼 든 며느리에게 쫓기기 시작하였다.
주지스님이 또 나타났다.
점례야,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원한 속에 죽게 된다.」
그러나 점례의 혼령은 아랑곳 없이 달려들어 스님에게 칼을 들이댔다.
스님이 염주로 그의 안면을 치자 칼을 던져버린 점례의 혼령이 붙은 새 며느리는 도망치듯 천정에 올라붙었다가 다시 내려와 스님의 목을 졸랐다.
스님은 가쳤던 큰 염주를 벗어서 그 목에 걸어주고 염불을 하였다.
발광하던 며느리가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점례의 혼령은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극락세계 환생하고 손자며느리도 다시 정상을 되찾았다.
이것이 망령의 곡이다.
어떤 사람들은
「절에 있던 사람이 저렇게 되어서야―」
하고 혀를 찬다. 하지만 번뇌 망상이 작은 수도인 들의 집착은 오히려 더 집념이 강하다.
그래서
「순수한 수도인을 저주한 죄는 무간지옥의 과보를 받는다.」
한 것이다.
오로지 한 생각으로 사랑하는 사람, 오로지 한 길로 나아가는 사람에겐 사랑도 저주도 강할 수밖에 없다.
한 자손을 위해서 뭇 생명을 헌신짝 같이 여기는 어리석은 생각, 돈이면 인륜도 도덕도 다 살 수 있다는 배금주의 속에 진실한 애정을 망각한 현대인의 배륜(排倫)사상이 여기 잘 나타나 있다.

사람들아, 거짓말은 하지 말라. 굳게 약속한 것은 굳게 지키라.
더구나 마지막 한 순간의 유언을 소홀히 내 생각대로 변경하지 말라.
변경 할 때는 그 영혼의 심중에 이해가 생길 때까지 고유(告鍮)하라.
그리하면 마침내 곤액(困厄)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연관목차

649/1978
기이설화
우지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