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식
[ 曺晩植 ]
시대 |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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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883년 ~ 1950년 |
이명 | 호 : 고당(古堂) |
직업 | 독립운동가, 정치가 |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고당(古堂). 평남 강서 사람. 1905년 평양 숭실학교 입학, 기독교에 입교하고 졸업 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메이지[明治]대학 법학부에서 공부했다. 그 무렵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의 무저항주의·인도주의에 감명받아 이를 독립운동의 거울로 삼았다. 귀국 후 교장이 되었으나, 때 잡혀 1년간 투옥되었다. 21년 평양 기독교청년회 총무, 산정현교회 장로가 되었으며, 22년 물산장려회를 조직, 국산품 장려운동을 폈다. 23년 ·와 연정회(硏政會)를 발기, 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30년 관서체육회장, 32년 <조선일보> 사장이 되어 무저항 을 폈다. 해방 후 평남 ·인민정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고 45년 11월 을 창당했다. 신탁통치안이 알려지자 반탁운동에 앞장서다가 연금당했으며, 월남하지 않고 있다가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