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공화국

제1공화국

[ 第一共和國 ]

시대명 현대
연도 1948년 ~ 1960년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후 60년 으로 이 탄생하기까지 존속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화헌정체제.

통치구조의 특색

3권분립 원칙에 의한 대통령중심제다. 본래의 헌법초안은 내각책임제였으나, 의 반대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어 혼합형적 헌법이 되었다. 행정부는 국무원과 국무총리를 두고, 외무·내무·법무·국방·재무·상공·농림·문교·사회·교통·체신 등 11개 부를 두었다. 국무총리 밑에 총무·공보·법제·기획의 4처를,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심계원·고시위원회·감찰위원회의 1원 2처를 두었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은 특별시, 지방은 도(道)로 구분, 도 밑에 시·군·읍·면을 두었다. 입법부는 제헌 당시의 단원제를 개헌을 통해 양원제로 바꾸었으나 끝까지 단원제로 있었다. 의원임기는 4년, 소선거구제로 보통·평등·직접·비밀투표로 선출되었다. 사법부는 대법원·고등법원·지방법원의 3심제로 구성, 사법권의 독립성·자주성·전문성이 헌법에 보장되었다. 그러나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 국회인준을 받도록 한 것은 행정·입법부의 인사관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후의 공화국과는 달리 선거관리기구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았다.

주요시책

철저한 반공주의를 내걸고 국가보안법을 제정, 공산당을 불법화했으며, 국제적 승인과 미국의 지원 획득에 주력하여 유엔의 승인을 얻는 한편, 미국과 상호방위협정 및 각종 협정을 체결하고, 국방력 증강에 힘썼다. 국민경제 안정책으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물가폭등, 농산물 가격과 임금하락 등 민중생활의 어려움은 극에 달했다.

정치·사회상

한민당의 재력과 조직을 바탕으로 정권을 장악한 은 내각책임제를 추진하려는 한민당과 곧 손을 끊고, 로 성장한 신흥상공업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을 조직, 1당독재의 길로 나아갔다. 자유당의 주요 인적기반은 식민지 시대의 총독부 관료·경찰출신으로, 이들은 이승만의 비호아래 처벌을 면하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찰과 행정기구 및 정권의 핵심을 이루었다. 이승만정권은 새로운 국가 건설과 전후 경제복구라는 시급한 과제를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아성을 쌓는 데 급급했으며, 국민생활은 불경기·실업·물가고 속에서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 위에 중석불 사건·국민방위군 사건··언론탄압·국회프락치 사건· 사건 등 부정부패와 집권 연장을 위한 각종 정치적 비리·조작 사건이 잇달았다. ·으로 이승만과 자유당의 종신집권을 꾀한 제1공화국은 마침내 1960년 4월 혁명으로 무너지고, 이 탄생했다.

연관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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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남한단독정부 수립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4. 반민특위의 좌절
제1공화국 지금 읽는 중
5. 6·25전쟁과 부산정치파동
6. 원조경제
7. 이승만 독재체제의 구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