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
[ 兪吉濬 ]
시대 | 근대/개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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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사망 | 1856년(철종 7년) ~ 1914년 |
본관 | 기계(紀溪) |
이명 |
자 : 성무(盛武) 호 : 구당(矩堂) |
직업 | 정치가, 개화운동가 |
구한말의 정치가·개화운동가. 개항기 최초의 유학생. 자는 성무(盛武), 호는 구당(矩堂), 본관은 기계(紀溪). 서울 출신. 에 건너가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에 입학했다가 83년 미국 보스턴 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둘러본 후 귀국했다. 때마침 으로 친일혐의자들이 소탕되는 가운데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었다. 이 구금기간에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인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여 95년에 탈고했다. 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 등을 지내고, 96년 내무대신에 올랐으나, 이른바 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1907년(융희 1) 귀국하여 (興土團)·한성부민회(漢城府民會) 등을 통해 국민계봉운동에 힘썼다. 후 일제가 남작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다. 1909년(융희 3) 국어학사장 최초의 문법서인 을 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