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 第一次世界大戰 ]

시대명 근대/일제강점기
연도 1914년 ~ 1918년

1914년 7월 28일~18년 11월 11일, 세계의 강국들이 모두 참가한 최초의 세계대전. 근본적으로는 식민지 세력권의 확대를 둘러싼 대립에서 비롯된 전쟁으로서, 특히 세계적인 식민지 지배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영국에 대해 독일이 도전함으로써 발단되었다. 영국은 유럽에서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의 에 대립하고 있는 노불동맹(露佛同盟)에 접근. 1904년 영불협상, 1907년 영로협상을 묶어 3국 협상을 형성, 독일의 세계정책에 대항했는데, 대립의 초점은 발칸·중근동 지역이었다. 14년 6월,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인에게 암살당한 사건을 도화선으로 하여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하고, 8월에는 독일·오스트리아와 영국·프랑스·의 사이에 선전포고가 교환됨으로써 세계대전으로 발전했다.

이윽고 ·루마니아·그리스가 영국 편으로, 터키·불가리아가 독일 편으로 참전했으며, 이탈리아도 전후의 영토확대를 약속받고 3국동맹을 파기, 영국 편에 섰다. 일본은 중국에 있어 이권확대를 노리고 영일동맹을 이유로 내세워 8월 23일 독일에 대해 선전을 포고, 산동성(山東省)의 독일 조차지 청도(靑島)와 독일령 남양제도를 점령하는 한편, 이듬해는 중국에게 21개조 요구>를 승인케 했다. 전황은, 전차·비행기 등 신병기에 의한 소모전, 경제력·병력을 모조리 동원한 총력전, 장기전이 되었으며, 전쟁 중 원래 사회적 모순을 크게 안고 있던 러시아에서는 17년 11월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듬해인 18년 3월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과 단독강화를 맺었다.

그러나 독일도 차츰 보급난을 겪게 된데다 17년 4월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결정적인 힘의 열세에 처하게 되어, 18년 11월 혁명의 결과 11월 11일에 휴전이 이루어지고, 19년 6월 이 체결되었다. 윌슨 미국대통령의 민족자결 등 강화원칙의 제창도 있었으며, 규약을 포함한 특이한 강화조약인 이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전승국은 위임통치 등의 명목으로 영토를 확대하는 한편, 독일에 대해서는 거액의 배상금이 부과되었다. 일본도 중국 산동성의 독일이권을 물려받고 남양제도의 위임통치령을 얻었다. 그러나 의 성공이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은 각지의 혁명운동·민족운동을 고양시킨 바가 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의 식민통치 10년 만에 거족적인 3·1독립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은 일본의 이권획득에 반대, 강화조약에 조인하지 않았으며, 문제는 로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