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중선

이화중선

[ 李花中仙 ]

요약 성악가(민요). 여류명창. 경상남도 부산(釜山) 동래(東萊) 출생.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의 제자.
출생 - 사망 1898년 ~ 1943년
이화중선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서 남도단가(南道短歌)와 남도소리 및 창극 등을 방송했으며, 많은 유성기음반에 취입하였다. 1898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전남 보성군 벌교면 장좌리로 이사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고, 15세 때 전북 남원(南原) 박씨 문중에 출가하여 평범한 촌부로 살았다.

송만갑협률사의 공연을 관람하고 창극에 매료되어 소리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남원권번(南原券番)의 소리선생 김정문(金正文)에게 소리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獎勵會) 주최 전국판소리대회에 출연했으며, 이후 상경하여 조선권번(朝鮮券番)에 기적(妓籍)을 두고 송만갑·이동백의 지도를 받아 더욱 정진해 여류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1927~1934년 이화중선은 남도단가(南道短歌)·단가·"소상팔경"(瀟湘八景)·창극조·춘향가 등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했다. 1927년 2월 17~20일 조선고가무회(朝鮮古歌舞會) 주최 조선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27년 8월 12일 경성방송국 주최로 열린 DK명창대회 때 이동백(李東伯)·신금홍(申錦紅)·강소춘(姜笑春) 등과 함께 방송했다. 1928년 3월 7일 보우친목회 주최 남녀명창대회 때 출연했으며, 1928년 7월 28일 호남악우회(湖南樂友會) 주최 납량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김소희·박녹주·정정렬·이화중선·임방울·한성준(박황 제공)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김소희·박녹주·정정렬·이화중선·임방울·한성준(박황 제공)

1930년 2월 8일 명창경연대회 때 출연했고, 1930년 9월 15일 팔도명창대회한성권번(漢城券番) 기생 김옥엽·이영산홍·이진봉 등과 함께 출연했고, 1931년 7월 1일 명창대회 때 출연했다. 1934년 5월 11일 조선음악연구회(朝鮮音樂研究會)의 발기총회 때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1935년 임종원이 창단한 대동창극단(大東唱劇團)에서 강남중·신영채·홍갑수·이중선·박초선·박초홍 등과 함께 주로 삼남(三南)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대 대동가극단(大同歌劇團)을 조직했으며, 원각사에서 김창환·송만갑·이동백을 비롯해 김초향·김추월·신금홍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장기는 춘향가였고, 특히 사랑가를 잘 불렀던 그녀는 1943년 재일교포위문공연을 다녀오는 길에 풍랑으로 사망하였다.

1937년 6월 11일 빅타축음기회사가 춘향전 전편(全篇)을 취입할 때, 정정렬·박녹주·임방울 등과 함께 취입하였다. 1930년대 "육자배기"·"흥타령"·"성주풀이"·"농부가"·"자진농부가"·"새타령"·"진도아리랑"·"개구리타령" 등의 남도민요를 음반에 취입했고, 빅타음반에 "보렴"을 취입했으며, 시에론음반에 "화초사거리"를 취입하였다. 강남중과 함께 일제강점기 반도창극단(半島唱劇團)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김금옥·이소향·김추월처럼 판소리 외에 남도잡가(南道雜歌)를 잘 부른 명창이었다.

권금주(權錦珠)·김창룡(金昌龍)·박종기(朴鍾基) 등과 함께 취입한 "가자 어서 가"·"강산유람"(江山遊覽)·"개구리타령"을 포함 40여 곡의 민요와 판소리 눈대목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녀가 이중선·지동근·한성준과 함께 취입한 개고리타령·고당상·광한루(廣寒樓)·기생점고·남도가요(南道歌謠)·남도잡가(南道雜歌)·농부가·단가·동풍가·"륙자백이"·"만고강산"(萬古江山)·"박석틔를 올라서서" 등의 민요와 단가 및 판소리 눈대목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일제강점기 그녀가 취입한 "조조군사 자탄가"·"천자뒤푸리"·"초한가"(楚漢歌)·"추월강산"(秋月江山)을 포함한 수많은 단가와 판소리의 눈대목은 시에론음반에 전한다. 그녀가 김녹주·김소희·신숙 등과 함께 오케고악단·오케효과단 반주로 취입한 "고당상"(高堂上)·"광한루 경개"·"기생점고" 외 20여 곡의 민요와 단가 및 판소리 여러 눈대목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일제강점기 그녀가 취입한 "적성가"(赤城歌)·"제비노정기"·"조병자탄가"(曺兵自嘆歌) 등은 태평음반에 전한다. 그녀가 취입한 단가 "초한가" 및 춘향전의 "오리정 이별"·"이별가"·"춘향가 이별," 그리고 흥보가(興甫歌)의 "흥보 쫓겨가는데"는 군소회사음반에 전한다.

일제강점기 그녀가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소상팔경"(瀟湘八景)과 "심황후 자탄가," 그리고 이중선과 함께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잡가 "꽃사거리"는 『三千里』(1932) 4권 8호·12호에 소개됐고, 『三千里』(1934) 6권 7호에 발표된 "팔도명창 가곡평(歌曲評)"에 소개되었다. 『朝光』(1938) 31호에 "조선광대의 사적 발달과 그 가치"에 나오고, 『新世紀』(1939) 1권 7호에 실린 "장안명기(長安名妓) 인물론(人物論)"에 소개되었다.

취입한 음반으로는 시에론음반(75-A: 천자뒤푸리), 콜럼비아음반 C40007~A(만고강산)·B(죽장망혜) 및 C40028(소상팔경)을 포함한 10여 종이 있고, 오케음반 1592B(추월만정)를 비롯한 10여 종이 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7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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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중선

이화중선 1898∼1943. 여류명창 중의 한 사람.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