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엽

김옥엽

[ 金玉葉 ]

요약 성악가(민요·유행가). 조선권번(朝鮮券番)·한성권번(漢城券番) 기생. 평양 출신. 장기는 조선구가(朝鮮舊歌). 경서도명창. 황해도 출생.
김옥엽

일제강점기 평양과 서울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난봉가"류의 서도잡가뿐만이 아니라 "아리랑" 등 경기민요도 잘 불러 인기가 높았다. 레코드에 취입한 "긴난봉가"·"잦은난봉가"·"엮음수심가" 등이 전하며, 『삼천리』(1935년 11월호)에 쟁쟁한 여류명창으로 소개되었다.

1920년대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경성좌창(京城座唱)과 경성잡가(京城雜歌)를 방송했다. 1929년 11월 13일 일본 대판지점(大阪支店)의 취입소에서 콜럼비아 축음기회사의 제2회 취입 때 복혜숙·김영환·김초향 등과 함께 취입하였다. 1930년 9월 15일 팔도명창대회 때, 1931년 5월 3~7일 조선명창대회 때, 그리고 1931년 9월 21~23일 제2회 팔도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이영산홍과 함께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서도잡가 "놀량"과 "앞산타령," 잡가 "가진방아타령" 및 그녀가 이진봉·박부용·이금옥과 함께 시에론음반에 취입한 "개성난봉가"와 "방아타령," 이진봉과 함께 취입한 서도잡가 "배다래기"와 "자진배다래기" 외 몇 곡, 이진옥과 함께 취입한 경기잡가 "병신난봉가"와 "경복궁타령," 이진봉·박부용·이금옥과 함께 취입한 잡가 "개성난봉가"와 "방아타령"은 『三千里』(1932) 4권 7호·8호에 소개되었다. 김계선·김연옥·이영산홍 등과 함께 취입한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을 포함한 20여 곡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김일지홍의 반주로 취입한 "개타령" 등 10여 곡의 민요는 일본 빅타음반에 전하며, 그녀가 취입한 "경기긴잡가" 외 10여 곡의 민요는 폴리돌음반에 전한다.

이영산홍·이진봉·이옥화와 함께 시에론관현악단 반주로 취입한 "개성난봉가"를 포함한 30여 곡의 민요와 여창지름 등은 시에론음반에 전한다. 그녀가 취입한 "군밤타령"을 포함한 여러 민요는 오케음반에 전하며, 이진봉·이영산홍과 함께 취입한 "노래가락" 외 20여 곡의 민요는 태평음반에 전한다. 이진봉·김옥엽과 함께 취입한 "매화타령"(梅花打令) 등의 민요는 군소회사음반에 전한다.

1930~1938년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김영근의 반주로 우락(羽樂) 등 몇 곡의 가곡, 가사 "춘면곡"(春眠曲) 등 및 "배따라기"를 포함한 30여 곡의 민요를 방송하였다. 일제강점기 김진명·이진봉·장학선 등과 함께 활동한 그녀는 1930년대 음반에 "박연폭포"(朴淵瀑布)·"한강수타령"(漢江水打令)·"사발가" 등의 경기민요를, 그리고 "수심가"(愁心歌)·"엮음수심가"·"영변가"(寧邊歌) 등의 서도민요를 취입했다. 빅타음반에 "놀량"·"뒷산타령"을, 폴리돌음반에 신해중월과 함께 "제비가"를, 오케음반에 "놀량"·"앞산타령"을, 태평음반에 이진봉·이영산홍과 함께 "놀량"·"앞산타령"·"뒷산타령"을 취입했으며, 시에론음반에 "놀량"·"앞산타령"·"경사거리"를 취입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185~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