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방송국

경성방송국

[ 京城放送局 ]

1927년부터 전파를 발사한 경성방송국(JODK)의 라디오방송은 유성기음반과 함께 음악수용층의 확대에 이바지한 대중매체이다. 1927년 2월 16일 경성방송국은 호출부호 JODK로 라디오방송을 최초로 개시하였다. 조선어방송이 생기던 1932년 말에는 송신기(送信機)의 출력이 6㎾에서 10㎾로 증강됐고, 1935년에는 동래수신소(東萊受信所) 및 부산방송국과 평양방송국이 설립됐으며, 1939년에 이르러 청진·함흥·이리를 포함해 다섯 곳의 지방방송국이 개국하였다.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기악합주단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기악합주단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한성준·임방울·이화중선·정정렬·박녹주·김소희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한성준·임방울·이화중선·정정렬·박녹주·김소희

1927년 2월 22일까지 등록된 라디오의 숫자는 1,400여 대에 불과했으나, 1930년대 말에는 22만여 대로 늘었다. 라디오의 급속한 보급 확산으로 말미암아 라디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라디오방송을 통한 음악활동은 전통음악의 확산과 보급에 크게 기여하였다. 초창기 방송음악은 생방송으로 진행됐으나, 레코드가 많이 보급된 1930년대부터는 레코드음반의 곡목이 방송됐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음악을 전쟁수행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방송을 통해서 전시가요(戰時歌謠)나 군국가요(軍國歌謠)처럼 전쟁과 관련된 가요를 보급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노래문화는 점차 군가조(軍歌調)로 바뀌었다. 경성방송국의 라디오방송은 음악이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의 소유물로 전환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참고문헌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614~15, 620, 676~77쪽

관련이미지

일본인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JODK, 1927∼1947)

일본인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JODK, 1927∼1947) ⓒ 커뮤니케이션북스 출처: 사라진 방송국

참조어

방송음악(放送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