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혜숙

복혜숙

[ 卜惠淑 ]

요약 배우·성우(聲優)·성악가(유행가). 충청남도 보령(保寧) 출생. 본명은 복마리(卜馬利).
출생 - 사망 1904년 ~ 1982년
복혜숙

1915년부터 1918년까지 이화학당(梨花學堂)에 재적했고, 1919년부터 3년간 기예학교(技藝學校)를 다닌 후 졸업하였다.

변사(辯士) 김덕경(金悳經)의 소개로 김도산(金陶山)을 알게 되어 신극좌(新劇座)에 입단했다. 1925년 창립된 조선배우학교(朝鮮俳優學校)에 입학했다. 그해 9월 이서구의 소개로 토월회(土月會)에 입단했고, 이때부터 복혜숙이라는 예명을 얻었다. 얼마 후 영화에 데뷔해 1926년 "농중조"(籠中鳥)에 출연해 인기 스타가 됐다. 곧이어 "낙화유수"(落花流水)와 "세 동무" 등에 등장했으며,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의 방송극에도 출연하였다.

1929년 11월 13일 일본 대판지점(大阪支店)의 취입소에서 콜럼비아 축음기회사의 제2회 취입 때 김영환(金永煥)·김초향(金楚香)·박녹주(朴綠珠) 등과 함께 취입하였다.

1930년 콜럼비아사에서 재즈송 "종로행진곡"(鍾路行進曲)과 "그대 그립다"를 출반했다. 콜럼비아관현악단 및 콜럼비아재즈밴드 반주로 취입한 "쌍옥루"(雙玉淚)·"애(愛)의 광"(光)·연애비극 "영세불후"(永世不朽) 등 10여 곡의 유행가 및 영화극 등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하고, 김영환·유경이와 함께 취입한 난센스·영화극·"낙화유수"는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김양춘·유계선·이백수와 함께 취입한 가요극·만담·"사투리"·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그녀의 글 "장안 재자가인(才子佳人) 영화와 흥망기(興亡記)"는 『三千里』(1939) 11권 1호에 발표되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4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