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선

장학선

[ 張鶴仙 ]

요약 성악가(민요). 경서도명창. 평양 태생.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29호 서도소리의 예능보유자. 본명은 장현길(張賢吉). 평양 기성권번(箕城券番) 김밀하주(金密花珠)의 제자.
출생 - 사망 1906 (또는 1905)년 ~ 1970 (또는 1971)년
장학선

1920년대 말엽부터 직업적인 민요가수로 등장하여 풍부한 성량과 형상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여류명창 장학선이 레코드에 취입한 "수심가"(愁心歌)·"엮음수심가"·"양산도"(陽山道)·"영변가"(寧邊歌)·"평양산염불"·"해주산염불"·"흥타령"·"청춘가"·"오봉산타령" 등이 전한다. 문명옥(文明玉)과 함께 "양산도"와 "방아타령"을 부르며 장고장단을 치면서 청중을 사로잡았다. 10세부터 서도창(西道唱)을 배우기 시작했고, 14세 때 기성권번에 들어가 김밀화주의 지도를 받았다.

19세 때 팔도명창대회에서 "수심가"로 1등에 입상했고 조선일보사 주최 명창대회에서 "관산융마"로 출연하여 1등상을 수상했으며, 일본 콜럼비아음반·빅타음반·오케음반에 많은 서도소리를 취입하였다.

1930년 9월 15일 경성부 서부지국 주최로 열린 팔도명창대회 때 한성권번(漢城券番) 기생 김옥엽·이영산홍·이진봉 등과 함께 출연했다. 1931년 9월 21~23일 제2회 팔도명창대회 때 출연했으며, 팔도명창대회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1932년 4월 20~22일 전조선명창대회 때 출연했다. 1933~1940년 고재덕·박지홍·방호준·백모란·이정엽과 함께 "개성난봉가"·"공명가"(孔明歌)·"관산융마"(關山戎馬)·"긴난봉가"를 포함한 20여 곡의 민요를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38년 5월 3~4일 전조선향토연예대회 중 여류명창경창대회 때 고일심·김벽도·김춘홍 등과 함께 서도민요를 공연하였다. 문명옥·안명환·임성운 등 "평양 산염불"(平壤山念佛)·"푸념"·"회심곡"을 포함한 20여 곡의 민요는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이병우(단소)·한성준(장구)과 함께 취입한 경기속요(京畿俗謠)·"경발님"·"긴난봉가"·"긴아리" 등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고재덕(笛)·김계선(젓대)·김승진(提琴)·김영순(장구) 등과 함께 오케관현악단 반주로 취입한 "간지타령"(簡紙打令)·"관산융마"·"긴아리랑"을 포함한 10여 곡의 민요는 오케음반에 전한다. 1930년대 김옥엽·문명옥·박월정 등과 함께 활동했고, "수심가"(愁心歌)·"엮음수심가"·"영변가" 등의 서도민요를 음반에 취입했으며, 기성권번의 서도소리선생 김밀화주의 같은 문하생 이반도화·이정렬·이부용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三千里』(1931) 3권 9호에 발표된 "춤 잘 추는 서도기생 소리 잘하는 남도기생"에 소개됐고, 『三千里』(1932) 4권 5호의 실린 "여배우 좌담회"에 출석하였다.

해방 후 1959년 팔도명창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수심가"와 "관산융마"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1년 작고한 후 김정연과 오복녀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두 명인의 문하에서 이춘목·김광숙·유지숙 등이 배출되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773~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