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이병우

[ 李炳祐 ]

요약 피리·단소·오보에 연주가. 호는 운파(雲波). 서울 출생.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 제1기 졸업생.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아악수(雅樂手).
출생 - 사망 1908년 ~ 1971년
이병우

경성방송국 전속악사 및 오케레코드사 전속악사를 지냈고, 고려교향악단(高麗交響樂團)·해군정훈음악대(海軍政訓音樂隊)교향악단·서울교향악단에서 클라리넷 주자로 활약했다.

1928년 11월 3일 이왕직아악부가 최초로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서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봉황음"(鳳凰吟)·"서일화지곡"(瑞日和之曲)·"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취태평지곡"(醉太平之曲)을 방송했을 때 출연하였다.

1932~1945년 이왕직아악부 시절 김일순과 함께 가곡 언락(言樂)·우락(羽樂)·편(編)·편락(編樂) 및 "가락도드리"·"개성난봉가"를 포함한 20여 곡의 민요, 그리고 "영산회상"(靈山會相)·오보에(oboe)독주 등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40년 퉁소독주로 "길군악"·"세가락정읍"(井邑)·"타령"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고연옥(高蓮玉)·곽경옥(郭慶玉)·곽명월(郭明月) 등과 함께 일본 빅타관현악단 반주로 취입한 "간장(肝腸)타령"·경기속가(京畿俗歌)·경기속요(京畿俗謠)·"경산염불"(京山念佛)을 비롯한 20여 곡의 민요와 피리독주 등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그가 곽산월(郭山月)·곽명월(郭明月)과 함께 취입한 "노래가락"·"매화타령" 등의 여러 민요는 폴리돌음반에 전한다.

해방 후 1946년 고려교향악단의 오보에 연주가였고, 1946년 9월 16일 우익 음악가들로 결성된 고려교향협회(高麗交響協會)의 회원이었다. 1947년 서울관현악단의 멤버였고, 1948년 서울교향악단에서 활동하였다. 1960년 3월 5일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가 출범했을 때 실기교사로 후진들에게 작곡·단소를 가르쳤다.

1962년 1월 '옛과 어제를 그리며 내일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예그린악단이 창단됐을 때 교향악부원이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6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