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

영산회상

[ 靈山會相 ]

요약 현행 연례악(宴禮樂)의 한 곡명. 일명 "거문고회상"·줄풍류·"현악영산회상." 아명은 "중광지곡"(重光之曲)·"우림령"(雨霖鈴).

10여 개의 조곡으로 구성된 현행 "영산회상"에는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줄풍류, 향피리 중심의 대풍류, 그리고 줄풍류를 4도 낮게 이조(移調)한 "평조회상."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현악영산회상"·"관악영산회상"·"평조회상"이 그것이다. 넓은 의미의 "영산회상"은 세 종류의 악곡을 모두 포함하지만, 좁은 뜻의 "영산회상"은 줄풍류 곧 "현악영산회상"만을 지칭한다.

아홉 곡으로 구성된 조곡 형태의 "영산회상"은 거문고 중심의 현악기 위주로 편성됐기 때문에, 이 곡을 "거문고회상"·줄풍류·"현악영산회상"이라고도 한다. 아명은 "중광지곡"이다. 악기편성·조(調)의 구성·악곡의 구성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영산회상"이 현재 연주되고 있다. 즉 향피리 중심의 관악기 위주로 편성된 "삼현영산회상"(三絃靈山會相) 일명 "표정만방지곡"·"관악영산회상"·"대풍류"가 있다. "영산회상"을 완전4도 아래로 이조(移調)시켜서 만든 "평조회상" 일명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취태평지곡"(醉太平之曲)이 있다. "영산회상"의 소곡(小曲)을 다른 곡과 구성해서 만든 "별곡"(別曲) 일명 "정상지곡"(呈祥之曲)이 있다. 이 세 명칭의 기악합주곡은 모두 조곡(組曲) 형태로 됐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삼현영산회상"·"평조회상"·"별곡"은 원곡(元曲)인 "영산회상"에서 파생된 기악합주곡이다. "영산회상"이라는 곡명은 석가(釋迦)가 『법화경』(法華經)을 가르치던 영취산회상(靈鷲山會相)에서 유래됐다. 본래 법화사상(法華思想)과 관련된 성악곡이었다.

현행 "영산회상"은 "상영산"(上靈山)·"중령산"(中靈山)·"세령산"(細靈山)·"가락덜이"·"삼현환입"(三絃還入)·"하현환입"(下絃還入)·"염불환입"(念佛還入)·"타령"(打令)·"군악"(軍樂). 이상 아홉 소곡으로 구성됐다. 각 장의 길이와 장단은 아래의 표와 같다.

현행 영산회상의 구성과 장단 일람표

현행 영산회상의 구성과 장단 일람표
구분 장별
초장 2장 3장 4장 합계 한 장단
곡명

상영산

3장단

4장단

4장단

6장단

17장단

20박자 또는 10박자

중령산

4장단

4장단

3장단

4장단

15장단

20박자 또는 10박자

세령산

4장단

4장단

4장단

4장단

16장단

10박자

가락덜이

4장단

4장단

3장단

3장단

14장단

10박자

삼현환입

9장단

11장단

6장단

9장단

35장단

6박자

하현환입

7장단

7장단

3장단

9장단

26장단

6박자

염불환입

22장단

16장단

6장단

7장단

51장단

6박자

타령

8장단

13장단

6장단

5장단

32장단

3분박 4박자

군악

10장단

9장단

22장단

7장단

46장단

3분박 4박자

〈역사적 유래〉 현행 "영산회상"은 순수한 관현합주곡이지만, 조선초기에는 노래의 가사와 악기의 반주로 이루어진 성악곡이었다. 즉 "영산회상"은 관현반주로 연주된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가사로 된 불교가요(佛敎歌謠)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5에 의하면, 향악정재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공연 때 여기(女妓)들은 춤추는 도중에 '영산회상불보살'라는 창사(唱詞)를 노래로 불렀다. 또한 "영산회상"의 관현반주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됐다.

여기들이 원을 그리고 빙빙 돌면서 춤추며 '영산회상불보살'을 제창하는 모양이 마치 승려들의 공불(供佛)을 모방한 듯하다고 성현(成俔)은 그의 『용재총화』(慵齋叢話) 권1에 기록하였다. 이렇듯 조선초기 영산회상은 당시 "관음찬"(觀音讚)·"본사찬"(本師讚)·"미타찬"(彌陀讚)과 함께 궁중에서 연주된 불교음악이었다. '영산회상불보살'의 가사가 달린 영산회상의 악곡은 세조(1455~1468) 때의 음악을 전하는 『대악후보』(大樂後譜) 권6과 조선후기에 편찬된 『속악원보』(俗樂源譜) 권5에 전한다.

『대악후보』 권6 소재 "영산회상"

『대악후보』 권6 소재 "영산회상"

영산회상의 가사 '영산회상불보살'은 중종(1506~1544) 때 수만년사(壽萬年詞)로 개작되어 세속화(世俗化)됐다. 『이수삼산재본금보』(二水三山齋本琴譜 1651) 소재 "영산회상"에는 한문가사가 전하지만, 『현금신증가령』(玄琴新證假令 1680)의 "영산회상"에는 한문가사가 없어진 거문고곡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노래 가사가 떨어졌다. 기악곡으로 된 "영산회상"은 이규경(李圭景)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 및 서유구(徐有榘)의 『유예지』(遊藝志)에 전하고, 16정간보(井間譜)와 율자보(律字譜)로 기보된 "영산회상"은 『속악원보』 권5에 전한다. "영산회상"은 순조(1800~1834) 때 창제된 사자무(獅子舞)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됐다.

현행 "영산회상"의 아홉 곡 중에서 "상영산"은 가장 오래된 모체의 곡이다. "중영산"·"세령산"·"가락더리"는 "상영산"에서 파생된 곡이다. 즉 "중영산"은 "상영산"에서, "세령산"은 "중영산"에서, 그리고 "가락더리"는 "세령산"에서 각각 유래됐다.

그 후 "삼현환입"·"하현환입"·"염불환입"·"타령"·"군악"이 첨가되어 현행과 같은 조곡의 "영산회상"이 탄생됐다. "하현환입"은 "삼현환입"의 2장 이하를 변주시킨 곡이고, "염불환입"은 『유예지』 당시의 "염불타령"(念佛打令)과 "육자염불"(六字念佛)에서 유래됐다. "타령"과 "군악"은 불교음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곡이었고, 조선말기 "영산회상"에 첨가됐다.

이렇듯 조선초기 "영산회상"은 불교 관련의 성악곡이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세속화되면서 성악곡에서 기악곡으로 변천되어 오늘에 이르게 됐다. 현행 "영산회상"의 연주에 쓰인 악기는 세피리·젓대·단소·해금·장구·거문고·가야고·양금이다. 1930년대 이왕직아악부 시절 비파·쟁이 첨가됐었으나, 현재 비파와 쟁은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571~74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248, 304, 348, 411~12, 472~73, 475, 483~85, 559쪽
  • 『民俗藝術事典』,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9년, 203쪽
  • 『國樂大事典』 張師勛,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4년, 523쪽

참조어

영산(靈山) , 관악영산회상(管樂靈山會相) , 평조회상(平調會相) , 평조영산회상(平調靈山會相), 표정만방(表正萬方), 삼현영산회상(三絃靈山會相) ,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