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 國立國樂院 ]

요약 우리나라 전통음악과 궁중무용을 관장하는 예술기관.

1948년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의 대표 이주환(李珠煥)은 아악원국영(雅樂院國營)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에 건의하자, 국회 제115회 본회의에서 청원결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됨으로써, 1950년 1월 19일 대통령령 제271호로 국립국악원의 직제가 공포됐다. 민족음악의 보존과 발전을 목표로 국립국악원은 문교부의 산하 기관으로 발족하게 됐고, 6·25전쟁 때문에 부산에서 1950년 12월 25일 성경린(成慶麟)이 악사장(樂士長)으로 임명됐다.

1951년 4월 9일 부산에서 정식으로 개원한 국립국악원의 초대 원장으로 이주환이 임명됐고, 4월 10일 이병성(李炳星)·김만흥(金萬興)·박영복(朴永福)·김보남(金寶男)·김영윤(金永胤)·김기수(金琪洙)·김성진(金星振)·이덕환(李德煥)·김준현(金俊鉉)·홍원기(洪元基)·김태섭(金泰燮)·이창배(李昌培)·김상기(金相麒), 이상 13명의 예술사(藝術士)가 임명됐다.

1953년 서울로 환도했다. 1954년 10월 1일 문교부령 제36호로 국악사양성소(國樂士養成所)의 규정이 공포됨에 따라 1955년 4월 1일 국악사양성소가 개소됐다.

1961년 10월 정부기관의 개편에 따라 국립국악원은 문교부에서 문화공보부로 이관됐고, 같은 해 12월 성경린이 2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67년 운니동(雲泥洞) 청사에서 1973년 8월 종합민족문화센터건립 계획에 의거하여 장충동(獎忠洞) 국립극장의 청사로 옮겼다.

1972년 3대 원장으로 김기수(金琪洙)가 취임했고, 1978년 2월 송방송(宋芳松)이 4대 원장으로 취임했으며, 그 이후의 원장의 이름과 재임기간은 다음 표와 같다.

역대 국립국악원의 원장 및 재임기간과 주요업적(2003년 기준)

역대 국립국악원의 원장 및 재임기간과 주요업적(2003년 기준)
성명 재임기간 주요업적

1대 이주환(李珠煥)

1952~1961

국립국악원 개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설립

2대 성경린(成慶麟)

1961~1972

국악기개량사업위원회 설치, 최초 해외공연(일본)

3대 김기수(金琪洙)

1973~1977

창작국악사업 및 한국음악 악보 발간사업 추진

4대 송방송(宋芳松)

1978~1980

민속악단 창단, 전통기악 전곡 완주발표회, 음악학자료총서 간행

5대 천영조(千英祚)

1980~1983

국립국악원 독립청사 건립 추진, 전국국악경연대회 개최

6대 한만영(韓萬榮)

1983~1985

서초동 청사 기공, 청소년 국악문화강좌 개설

7대 이승렬(李勝烈)

1986~1993

국립민속국악원 기공, 국립국악원 서초동 청사 개관

8대 김광락(金光洛)

1993~1994

국악의해 기념 대축제 행사, 생활국악대전집(음반) 제작

9대 이응호(李應浩)

1994~1995

교육연구동 준공, 국악박물관 개관

10대 이성천(李成千)

1995~1997

예악당(대극장) 개관, 96세계피리축제 개최

11대 한명희(韓明熙)

1997~1999

국립민속국악원(남원) 개원, 국악FM방송 설립 준비

12대 윤미용(尹美容)

1999~2003

국악FM방송 개국, 개원50주년 기념식 및 행사

1963년 제18주년광복절경축예술제 및 1964년 일본공연 프로그램(국립국악원 제공)

1963년 제18주년광복절경축예술제 및 1964년 일본공연 프로그램(국립국악원 제공)

1978년 8월 당시 국립국악원의 재직 인원은 이렇다. 원장: 송방송, 서무과: 노정한(과장)·김경래·김경수·홍성복·홍갑성; 장악과: 김용(과장)·정재국·최충웅·이승렬·김중섭·박정수·조운조·김길운·김응서·황득주·김정수; 연구원: 성경린·김천흥·김성진·김용만·이석재·이상규·박성기·양연섭; 연주원: 김태섭·이동규·이예근·황규남·사재성·황규일·김종식·김재운·조성래·윤찬구·김영욱·백혜숙·최윤찬·윤병철·박인기·정창영·박숙자·한갑득·이양교·성판례·이영우·김관희·이세환·최성운·김희숙·김덕순·하루미·박인자·박현숙·박용호·송권준·김은이·임재심·이재경·김숙이·이인원·임현선·문신희·최은희·김미숙·곽태규·정견진·박영숙·김춘희·고혜란(원장 비서); 무급단원:강영희·채성희·임승자·홍경희·양승애·문영란·안승훈·유연숙·김오경·문용숙·임재원·곽진우·김철호·이철이·채주병·김영기·신혜영·이오규·한세현·강호중·강영근·한상미·이영이·노영화·고애순·이정옥·조화선·이경애·유선봉·전영하·김교숙·손옥이·김미희·임명희·김인숙·장향미·원필녀·정경림·김수옥·주영위·이하선·송정희·채명심·최은미·조경숙·양경숙·윤남숙·박희숙·심정희·배양현·윤병천·김영동.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있는 국립국악원의 우면당과 예악당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있는 국립국악원의 우면당과 예악당

국립국악원의 최초 해외연주는 1964년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사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2차 도일공연은 1966년에 있었고, 세 번째 해외공연은 1967년 대만(臺灣)에서 있었다. 4차 해외공연은 1972년 미국 아시아학회(Asia Society) 초청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있었고, 1973년에는 프랑스·스위스·독일 등 유럽 공연이 있었다. 1975년 광복30주년기념 재일동포 위문공연단이 파견됐고, 그 이후 해외공연이 자주 있었다.

1968년부터 오선보로 채보된 악보집인 『한국음악』이 매년 출간됐다. 『한국음악선집』이라는 음반이 1972년부터 매년 출반됐으며, 1974년부터는 정간보의 악보집인 『국악전집』이 간행됐다. 1978년부터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 제1집 『대악후보』의 영인본을 출간한 이후 매년 고악보의 영인본을 출간해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 운니동 시절의 국립국악원(국립국악원 제공)

서울 종로구 운니동 시절의 국립국악원(국립국악원 제공)

국립국악원에 전하는 여러 유물들은 편종(編鍾)·편경류 190점, 그리고 도병(圖屏)과 그림 및 악보와 악서 등의 서지(書誌)류 200여 점이다. 편경 중에 정미년(丁未年) 편경은 1427년(세종 9)에 제작된 것이고, 무신년(戊申年) 편경은 1428년(동왕 10)에 제작된 것이며, 을축년(乙丑年) 편경은 1745년(영조 21)에 제조된 것이다. 고악보로는 『대악후보』(大樂後譜)·『금보신증가령』(琴譜新證假令 1680)·『속악원보』(俗樂源譜)·『삼죽금보』(三竹琴譜)·『시용무보』(時用舞譜)·『가곡원류』(歌曲原流)·『송씨이수삼산재본금보』(宋氏二水三山齋本琴譜)·『초입문금보』(初入門琴譜)·『서금가곡』(西琴歌曲)·『아금고보』(峩琴古譜)·『율보』(律譜) 등이 있다. 악서로는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진작의궤』(進爵儀軌 1827)·『진찬의궤』(進饌儀軌 1901)·『진연의궤』(進宴儀軌 1902)·『임인진연도병』(壬寅進宴圖屏: 1902) 등 소중한 문헌 및 도상자료들이 현재 국악박물관에 소장되어 전한다.

1991년 12월 17일 대통령령 제13,520호로 국립국악원의 직제가 개정되어 1992년 9월 국립국악원 소속의 국립민속국악원의 기공식을 남원(南原)에서 열었다. 1995년 2월 23일 국악박물관 신축건물 개관식이 열렸고, 1996년 10월 26일 예악당이 개관됐다. 1998년 2월 15일 거행된 국립국악원의 신축건물 개관식은 장충동시대를 마감하고 서초동시대를 열었다. 1998년 국악FM방송의 설립이 새 문화정책사업으로 선정되어 2001년 3월 2일 출범하였다.

1989년부터 『국악원논문집』(國樂院論文集)과 『국악연감』(國樂年鑑)이 매년 간행됐고, 1991년부터 『한국음악학술총서』가 출간됐다. 1996년부터 동양음악학학술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01년 5월 유네스코(UNESCO)가 국립국악원이 관장해온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고, 이어서 2003년에는 판소리를, 그리고 2010년 가곡(歌曲)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1.283~94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697~98, 756~58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방송, 83~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