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복

박영복

[ 朴永福 ]

요약 타악기(장고) 연주가.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1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예능보유자.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아악수(雅樂手). 전공은 장구.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 제2기 졸업생. 본명은 박놈쇠(朴imagefont釗).
출생 1907년
박영복

1932~1945년 박영복은 장구·피리이왕직아악부 시절 김일순·송도홍·송본두봉(松本斗峰) 등과 함께 가사·"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봉황음"(鳳凰吟) 등 여러 곡의 조선아악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1932년 12월 1일 제3회 공연 때 "정상지곡"(呈祥之曲)을 합주하였다.

1933년 11월 2일 이습회(肄習會)의 제13회 공연 때 박성재(朴聖在)의 "만년장환지곡" 언락(言樂)·편락(編樂)·편(編) 독창을 반주했고, 12월 7일 제14회 공연 때 김선득(金先得)의 "만년장환지곡" 우조두거(羽調頭擧)·삼수(三數)·소용(騷聳) 독창을 반주했으며, 이재천(李載天)의 가사(歌詞) "죽지사"(竹枝詞) 독창을 반주하였다. 1934년 1월 11일 제15회 공연 때 김천흥(金千興)의 "만년장환지곡" 계면(界面) 농(弄)·계락(界樂) 독창을 반주했고, 이점룡(李點龍)의 가사(歌詞) "황계사"(黃鷄詞) 독창을 반주하였다. 일제강점기 영전영복(永田永福)으로 창씨개명하고 가곡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51년 4월 9일 부산에서 이주환(李珠煥)이 국립국악원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됐을 때 그는 이병성·김만흥·김보남·김영윤·김기수·김성진·이덕환·김준현·홍원기·김태섭·이창배·김상기와 함께 예술사(藝術士)로 임명되었다. 국립국악원 장악과 연주원(1951~1972)을 거쳐 1964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절고(節鼓)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9년 10월 15일 제10회 중요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발표공연 때 출연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55~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