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김기수

[ 金琪洙 ]

요약 대금 연주가·작곡가. 제3대 국립국악원장(1973~1977). 종묘제례악(중요무형문화제 제1호) 및 처용무(제39호)의 예능보유자. 아악부원양성소 제4기 졸업생. 전공은 젓대[大笒]. 서울 출생. 호는 대마루·죽헌(竹軒).
출생 - 사망 1917년 ~ 1986년
김기수

1931년 아악부원양성소 제4기생으로 입학하여 대금을 전공했다.

1936년 아악부원양성소 졸업 후 아악수(雅樂手) 시절인 1930년대 후반기 단소·당적(唐笛)·젓대·중금(中笒)·편종으로 노래·단소반주·당적독주(唐笛獨奏)·대금독주·대금반주·중금독주(中笒獨奏) 등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39년 12월 이능화(李能和)의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이 신곡공모에 당선되어 1940년 일본 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행사 때인 11월 9일 초연됐고, 1941년 4중주곡 "세우영"(細雨影)을 작곡하였다. 1936년 5월 7일 이습회(肄習會)의 제43회 공연 때 출연하기 시작하여 1942년 2월 4일 제108회 공연 때까지 꾸준히 연주활동에 동참하였다.

1940년 "황화만년지곡"을, 1941년에는 4중주곡 "세우영"을, 그리고 1944년에는 "고향소"(顧鄕韶)를, 1952년에는 "정백혼"(精白魂)·"송광복"(頌光復)·"명단풍"(明丹風)·"개천부"(開天賦)를 작곡하였다. 1953년에 "하원춘"(河元春)·"충혼제"·"회서양"(會瑞陽)을, 1954년에는 "파붕선"(破崩線)을, 1955년에는 "내마을의 전설"을, 1956년에는 "단종애사"·"처용랑"을, 1957년에는 "무제악"을, 1961년에는 "신양즉흥곡"·"현충제예악"·"신작로"·"승리취타곡"을 작곡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국군장병을 위문하기 위하여 군예대(軍藝隊) 국악소대 소속으로 활동했고, 1951년 4월 10일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개원됐을 때 예술사(藝術士)로 임명되었다. 국립국악원 장악과장(1953~1962)과 제2대 악사장(1962~1973)을 지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1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예능보유자 및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處容舞)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2년 국립국악원장으로 취임했다. 1976년 12월 문화재관리국과 문화재보호협회가 공동 제작한 『한국의 음악』에 종묘제례악을 취입하였다. 1977년 7월 초대 교장 성경린의 뒤를 이어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제3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재직하다 1983년에 정년퇴임하였다.

1963년 제악(祭樂) "선현·열사 제례악"·무용극 "산제"(山祭)·무용극 "영지"(影池)를 작곡했고, 1965년 "낙화만강"(落花滿江)·"새아침"·무용극 "규중칠우"(閨中七友)를 작곡했으며, 1966년 가악 "이몸이 죽고 죽어"를 작곡하였다. 1968년 가악 "8월의 노래"를 작곡했고, 1969년 합악 "새동산"·관현악 "마파람"·가야금독주곡 "향란"(香蘭)·무용극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작곡했으며, 1970년 피리독주곡 "가람"·가악 "영원히 민족의 이름으로"를 작곡하였다. 1971년 합주곡 "허튼가락 새가락"을 작곡했고, 1972년 중주곡 "다스름"을 작곡했으며, 1973년 합주곡 "고원(高原)의 자성(紫星)"·합주곡 "전원만보"(田園漫步)·합주곡 "그로델 드 마잘의 인상(印象)"을 작곡하였다. 1974년 합악 "신개지"(新開地)·새 창극 "강감찬장군"(姜邯贊將軍)을 작곡했고, 1975년 합악 "광복의 환희"·취타곡 "탄탄"(坦坦)·행진곡 "광복의 찬미(讚美)"를 작곡하였다.

1976년 4월 15일 국립국악원 창작음악발표회 때 "사반세기"(四半世紀)를 발표했고, 10월 27일 국립국악원 제7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출품했다. 1977년 9월 20일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제59회 정기연주회 때 "미친 듯 취한 듯"을 발표했고, 12월 20일 제9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회행풍락"(回行風樂)을, 그리고 12월 22일 제10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81530"을 발표하였다. 1978년 9월 4일 제3회 대한민국음악제 때 "관현악 새아침"을 발표했고, 11월 29일 해금독주회에서 "등롱"을 발표하였다.

1979년 10월 22일 창작국악발표회 때 작품 "미친 듯 취한 듯"을 발표했다. 1981년 12월 8일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노송(老松)나무"를 발표하였다. 1982년 11월 12일 해경악회 제3회 정기연주회 때 "미친 듯 취한 듯"을, 12월 1일 제1회 한국창작음악 발표회 때 "세우영"을, 그리고 12월 16일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회행풍락"을 발표하였다. 1984년 11월 29일 한국창작음악연구회의 연주회 때 "다시름"을 발표했고, 1987년 6월 23일 제26회 한국음악창작발표회 때 "새동산"을 발표했다. 1991년 3월 29일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제30회 정기연주회 때 "노송나무"를, 그리고 4월 25일 한국정악원연주단 제8회 정기연주회 때 "새아침"을 발표하였다.

제3회 서울시문화상 음악상(1953)·제6회 국악상 공로상(1961)·대한민국 예술원의 공로상(1977)·제1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979년)을 수상했고, 1982년 제1회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향소"(1944)·"회서양"(1953)·"새나라"(1962)·"초롱"(1983)·"대금독주곡 미친 듯 취한 듯"(1976)·"높은 하늘"(1982) 등이 있다.

악보집 및 저서로 『악전첫걸음』(1958), 『대금교본』(1961)·『단소교본』(1963), 『고가신조』(古歌新調 1967), 『월하정가선』(1971), 『국악입문』(1972), 『국악전집』 제1집(1973)~제8집(1980), 『속 고가신조』(1976), 『남창가곡백선』(1979), 『여창가곡 여든여덟닢』(1980), 『한국민요오십곡집』(1958), 『한국음악』 제1집~제4집(1969)·제5집~제7집(1970), 『한국음악』 제8집(1971)~제10집(1972), 『한국음악』 제12집(1974)~제17집(1981), 『단소율보』(1991), 『가야금정악』(1994).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96~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