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수

아악수

[ 雅樂手 ]

요약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직급 중 하나.

1913년 (雅樂隊)를 로 개칭할 때, 아악대의 (樂工)과 (樂生)은 아악수로 개칭됐다. 당시 (雅樂手長) 밑에서 일한 아악수의 임무는 궁중음악을 연주하는 것뿐이었고, 1919년 이후 모집된 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1913년 당시 아악수는 (崔聖浩)·(徐元河)·마성운(馬成雲)·김흥석(金興石)·이봉기(李鳳起)·(朴疇鉉)·(李龍振)·(李永枝)·(權興元)·(李淳用)·(田明善)·(李昌學)·(金永琦)·(姜在興)·이창식(李昌植)·(咸在煥)·(朴德壽)·(李聖昌)·(李慶玉)·(韓光雲)·(朴容植)·(金壽天)·(高永在)·(金炯澤)·(金鍾聲)·박윤근(朴潤根)·(曺尙俊)·(金桂善)·황종순(黃鍾淳)·(韓國鉉)·(金斗鉉)·(朴德俊)·(高興三)·(黃德俊)·(韓正根), 이상 42명이었다.

1915년 아악수장으로 승진한 4명은 유의석(劉儀石)·(朴德鉉)·(成載寬)·(徐完吉)이었다. 아악수장의 지침 아래 아악생양성소(雅樂生養成所)에서 일정한 기간의 교육을 마치고 졸업한 아악생 중에서 우등생은 아악수로 임명됐고, 월급으로 30원을 받았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433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5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