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

중금

[ 中笒 ]

요약 신라 삼죽(三竹)의 하나.

죽부(竹部) 또는 공명악기(空鳴樂器, aerophone)에 드는 중금은 횡적(橫笛)의 일종이다. 신라 이후 조선시대까지 대금(大笒)과 함께 향악기(鄕樂器)의 뼈대를 이루는 관악기다. 대금보다 작고 소금(小笒)보다 큰 중금을 위한 악곡이 245곡이나 있었다. 아조(雅調)·월조(越調)·반섭조(般涉調)·준조(俊調)를 포함한 일곱 악조가 사용됐다고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전한다.

고려사회에서 중금이 거문고·젓대·가야고·비파·해금·장고와 함께 연주됐음은 『고려사』 소재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 확인된다. 『고려사』 권71(「악지」)에 의하면, 고려 당시 중금의 몸통에 열세 구멍으로 뚫렸다.

중금의 손 짚는 법

중금의 손 짚는 법

중금 본문 이미지 1

조선초기 중금은 오례의(五禮儀)의 종묘(宗廟)·영녕전(永寧殿) 헌가(軒架) 및 전정헌가(殿庭軒架)에 배열된 악기의 하나이다. 성종(1469~1494) 때 중금은 종묘제향(宗廟祭享) 때 헌가에서 대금·소금과 함께 연주됐고, "여민락만"·"여민락령"·"보허자"(步虛子)·"낙양춘" 등 당악계 음악의 연주 때에도 연주됐으며, 오례의 전정헌가에서 편종·편경·당비파·월금·당적 등과 함께 연주됐다. 그런데 조선후기 『진찬의궤』(進饌儀軌)·『진작의궤』(進爵儀軌)·『진연의궤』(進宴儀軌)에 중금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연례악의 연주 때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권71(「악지」)의 중금은 대금처럼 12공(孔)을 지녔고,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7을 보면 성종 때 중금은 대금이나 퉁소처럼 청공(淸孔)을 지니고 있었지만, 현재 중금에는 청공이 없다. 근래 대금을 배우기 전에 취법(吹法)과 운지법(運指法)을 익히기 위해 중금이 쓰였으나, 1940년대 이후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2011~12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84~85, 151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321쪽
  • 『國樂大事典』 張師勛,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4년, 702쪽
  • 『韓國樂器』 송혜진 글 강운구 사진, 서울: 열화당, 2001년, 1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