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종묘

[ 宗廟 ]

요약 조선왕조 역대 왕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祠堂). 일명 종묘영녕전.

조선초기 종묘는 대사(大祀)에 드는 제향(祭享)이라고 『세종실록』 소재 「길례서례」(吉禮序例)에 나온다.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2에 의하면, 종묘제향(宗廟祭享)은 음력 1월·4월·7월·10월, 이렇게 1년에 네 번 거행됐고, 종묘와 영녕전의 제례의식 때 장악원(掌樂院)은 속부제악(俗部祭樂)을 연주한다. 현재 종묘는 큰 공을 세운 임금의 위패를 모신 본전(本殿)과 단명했거나 공이 없는 왕의 위패를 모신 영녕전으로 구성된다. 본전이나 영녕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되는 음악을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라고 한다.

개성(開城)에서 한양(漢陽)으로 천도(遷都)한 이듬해인 1395년(태조 4) 9월 종묘가 최초로 세워졌다. 1416년(태종 16) 종묘의 제기고(祭器庫)와 재생방(宰牲房)이 신축됐으며, 1421년(세종 3) 영녕전이 건립됐다. 1546년(명종 1) 종묘 대실(大室) 세 칸(間)이 증축됐다. 종묘서(宗廟署)를 두어 수위(守衛)를 감당케 했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때 종묘는 불타버렸다.

종묘의 중건은 1608년(선조 41)에 이루어졌고,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직후 종묘와 영녕전을 개조했다. 1726년(영조 2) 태묘 4칸을 증축했고, 1778년(정조 2) 종묘의 공신당(功臣堂)을 건축했다. 1835년(헌종 1) 10월 태묘의 2간을 증축함으로써 종묘 태실(太室)은 17칸이 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1981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309~3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