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파

비파

[ 琵琶 ]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가야고나 거문고처럼 궁중의 안팎에서 널리 연주되던 비파는 팔음(八音) 중 사부(絲部)에 들고, 현명악기(絃鳴樂器, chordophone)에 든다.

『삼국사기』 「악지」(樂志)에서 김부식은 『석명』(釋名)을 인용하여 "비파는 본래 북쪽 오랑캐들이 말 위에서 연주하던 현악기이다. 손을 밖으로 밀어서 소리내는 것을 비(琵)라 했고, 손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소리내는 것을 파(琶)라고 했다"고 비파의 유래를 설명했다.

봉암사의 지증대사적조탑에 부조된 주악상(생·횡적·비파·종발·피리·박)의 탁본(『한국학기대관』)

봉암사의 지증대사적조탑에 부조된 주악상(생·횡적·비파·종발·피리·박)의 탁본(『한국학기대관』)

① 고구려 악기의 하나. 본래 서역계(西域系) 악기의 하나로 한나라 때 고구려에 들어온 비파는 수나라 대업(大業 605~607) 때 구부기(九部伎)의 고려기(高麗伎)에서 탄쟁(彈箏)·와공후(臥箜篌)·수공후(竪箜篌) 등과 함께 연주됐고, 당나라 태종(626~649) 때 십부기(十部伎)의 고려기에서 의취적(義嘴笛)·생(笙)·소(簫) 등과 함께 연주됐다. 이때 연주된 비파가 5현비파 즉 향비파인지 4현비파 곧 당비파인지는 불분명하지만, 5현비파로 추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북사』(北史) 권94 및 『수서』(隋書) 권81 소재 고구려의 악기 중 오현(五絃)이 나오고, 장천(長川) 1호분의 벽화에서 5현비파가 나오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멸망 후 5현비파는 통일신라에 수용되어 삼현(三絃)의 하나로 조선시대까지 전승됐다.

중국 길림성 정효공주 무덤의 벽화에 나오는 비파

중국 길림성 정효공주 무덤의 벽화에 나오는 비파

② 발해(渤海) 현악기의 하나. 1980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발굴된 정효공주(貞孝公主) 무덤의 고분벽화에 나오는 비파는 목 부분이 굽은 4현짜리의 당비파이다.

③ 고려시대 악기의 하나. 1114년(예종 9) 안직숭(安稷崇)이 귀국할 때 송나라 휘종(徽宗 1101~1125)이 보낸 신악(新樂)의 철방향(鐵方響)·석방향(石方響)·오현(五絃)·쌍현(雙絃)·쟁(箏)·공후(箜후피리(觱篥)·지(篪)·소(簫)·포생(匏笙)·훈(壎)·대고(大鼓)·박판(拍板) 중에 비파 4벌이 포함됐다. 그 비파가 5현비파인지 4현비파인지는 불분명하다. 네 줄의 비파는 교방고(敎坊鼓)·대쟁·박·방향·아쟁·장고·적(笛)·퉁소(洞簫)·피리와 함께 『고려사』 권71(「악지」)에 전한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에서 네 줄짜리의 비파를 당비파라고 불렀고, 다섯 줄짜리의 비파를 향비파라고 하여 당비파와 명칭 상으로 구분하였다. 두 비파의 몸통이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처럼 생겼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서로 다르다.

향비파는 곧은 목을 지녔고, 술대로 줄을 튕겨서 연주하지만, 당비파는 굽은 목을 지녔고, 가조각(假爪角)이나 발목(撥木)으로 줄을 튕겨서 연주하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비파는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에서 연주됐지만, 광복 이후 국립국악원에 전승되지 않았다.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3.1050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50, 125~26, 151, 177, 181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송방송, 193쪽
  • 『高麗音樂史研究』 宋芳松, 서울: 일지사, 1988년, 229쪽
  • 『高麗音樂史研究』 宋芳松, 서울: 일지사, 1988년, 233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154쪽
  • 『韓國樂器』 송혜진 글 강운구 사진, 서울: 열화당, 2001년, 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