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환

이주환

[ 李珠煥 ]

요약 피리 연주가·가곡명창. 초대 국립국악원장(國立國樂院長). 서울 출생. 하규일(河圭一)의 제자.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아악사(雅樂師). 본명은 이복길. 전공은 피리.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 제3기 졸업생. 호는 소남(韶南). 바꾼 이름은 이주환.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雅樂手).
출생 - 사망 1909년 ~ 1972년
이주환

1909년 5월 24일 이직상(李稷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26년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아악부원양성소 3기생으로 입학하여 동기생 성경린·김보남·봉해룡·김영윤·이재천 등과 함께 음악 인생을 걷게 되었다. 아악생 재학 시절 동료들과 전악회(展樂會)를 만들어 활약하다가 1931년 졸업하면서 아악부의 아악수로 임명됐고, 1937년 아악수장(雅樂手長)으로 승진했다. 처음 이름 이복길을 이주환으로 바꾸었다.

1933~1938년 이왕직아악부 시절 가곡·노래·"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봉황음"(鳳凰吟)·"서일화지곡"(瑞日和之曲) 등의 조선아악·편경독주·피리독주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했고, 1936~1943년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가곡·가사·남창가곡·노래·양금독주·"어부사"(漁夫詞)·여창가곡(女唱歌曲)·피리독주를 방송하였다.

1935년 김윤덕(金潤德)이 설립한 수요회(水曜會)에서 1940년대 초까지 김계선(젓대)·김상순(양금)·김수천(장구)·김영도(양금)·김윤덕(거문고김태영(거문고)·민완식(양금)·이병성(가곡)·이언식(거문고)·지용구(해금)·최성환(시조)·최영재(거문고)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6년 12월 3일 이습회(肄習會)의 제50회 공연 때 "정상지곡"(呈祥之曲)을 합주한 이후부터 1944년 1월 13일 제135회 공연 때 가사(歌詞) "황계사"를 독창할 때까지 공연활동에 출연하였다. 1939년 12가사 채보 및 한성준의 승무 무보를 완성했고, 1941년 아악사로 승진했다. 1942년 종로권번(鍾路券番)의 가곡과 가사 사범으로 활약하였다.

가곡을 부르는 이주환(문화재청 제공)

가곡을 부르는 이주환(문화재청 제공)

1945년 8·15광복 직후 이왕직아악부를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로 개칭했을 때, 교양부원인 그는 구왕궁아악부의 부장인 장인식(張寅湜), 총무부원인 성경린·봉해룡·서상운·이덕환·홍원기, 장악부원인 이재천·김보남·김성진, 그리고 교양부원인 이재천·이덕환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6년 7월 시조연구회(회장 이병기)를 결성했다. 그해 9월 사임한 장인식의 후임으로 구왕궁아악부 제6대 아악사장(雅樂師長)으로 승진했다. 1950년 2월 한국음악가협회(韓國音樂家協會) 최고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46년 5월부터 정례 시조강습회를 열었다. 1948년 8월 아악부원의 대표로 구왕궁아악부 국영안(國營案)의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제115회 본회의에서 이 국영안이 통과됐다. 정부는 문교수 소관으로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의 설립 규정 및 직제를 작성함으로써 1950년 1월 19일 대통령령 제271호로 국립국악원의 직제가 공포되었다.

1951년 4월 10일 부산에서 국립국악원이 개원됐을 때 원장으로 임명되어 제1대 국립국악원장(1951~1961)을 역임했고,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國樂士養成所)를 설립했다.

1960년부터 서울대 국악과 강사로 출강했고, 1961년 국립국악원장직을 사임하고 고문이 됐다. 1964년 12월 5일 국립국악원에서 발족된 국악기개량위원회(國樂器改良委員會)의 위원 중 한 사람이었다. 1968년 한국정악원(韓國正樂院) 이사장에 취임했다. 1969년 1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30호(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됐으며, 1970년 12월 1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41호(가사)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71년 『소남가곡선집』(韶南歌曲選集)을 출반(出盤)했고, 1972년 4월 (사)가곡보존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5월 『한국음악선집』 제1집에 태평가를 취입하고 11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1956년 국악진흥회의 제1회 국악상(공로상)을 수상했고, 1957년 시조창 보급의 공로자로 서울특별시가 제정한 제7회 서울시문화상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 11월 대통령 표창 동백장을 수상했고, 1971년 7월 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고금시조선』(1958)·『가곡보』(1959)·『가사보』(1960)·『가곡보 속』(1962)·『시조창(時調唱)의 연구』(1963·1987)가 있다. 음반으로 『소남가곡선집』(1971)·『이주환 가곡가사선집』(1989)·『한국음악선집』 제1집(1972) 등이 있다. 1982년 11월 16일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추모음악회를 열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707~7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