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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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張寅湜 ]

요약 거문고 연주가.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1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예능보유자.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아악사(雅樂師). 전공은 거문고. 피리 겸공(兼攻).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 제2기 졸업생. 본명은 장정봉.
출생 1908년
장인식

1922년 아악부원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하여 함화진(咸和鎭)·이수경(李壽卿)에게 거문고를 배웠다. 졸업 후 아악수·아악수장·아악사를 거쳐 1940년 함화진 퇴임 후 수석 아악사로 아악부를 영도하였다.

1928~1931년 이왕직아악부 시절 조선아악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봉황음"(鳳凰吟)·"서일화지곡"(瑞日和之曲)·"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1932년 10월 13일 이습회(肄習會)의 제1회 공연 때 "만년장환지곡" 우조이수대엽(羽調二數大葉)과 삼수대엽(三數大葉)을 반주한 이후부터 1943년 11월 4일 제133회 공연 때 "중광지곡"(重光之曲)의 "타령"(打令)·"군악"(軍樂)을 독주할 때까지 꾸준히 공연활동에 출연하였다.

1940·1941년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사와 아악사장(雅樂師長) 시절 그가 지휘한 "서일화지곡"·"수룡음"(水龍吟)·"유황곡"·"중광지곡"·"황화만년지곡"(皇花萬年之曲)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했다. 1941년 3월 25일 설립된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의 이사 14명 중 함화진·김관·계정식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2~1943년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사장 시절 "기수영창지곡"(其壽永昌之曲)·"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서일화지곡"(瑞日和之曲)·"수연장지곡"(壽延長之曲) 등의 아악곡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그의 글 "가야금"은 『女性』(1940) 5권 11호에 발표됐고, 그의 글 "나의 반려(伴侶): 나와 현금"은 『朝光』(1941) 66호에 발표되었다.

1945년 8·15광복 후 10월 국악건설본부(國樂建設本部)를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창설한 국악회를 국악원(國樂院)으로 개칭했을 때 문화국 소속이었다. 1945년 8·15광복 직후 이왕직아악부를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로 개칭했을 때, 부장을 맡은 그는 총무부원인 성경린·봉해룡·서상운·이덕환·홍원기, 장악부원은 이재천·김보남·김성진, 그리고 교양부원인 이주환·이재천·이덕환과 함께 활동하였다.

구왕궁아악부를 사퇴하고 재야에서 지내다가 1968년 12월 23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의 편경·일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79년 10월 15일 제10회 중요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발표공연 때 출연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7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