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황곡

유황곡

[ 維皇曲 ]

① 조선초기 제례악(祭禮樂)의 한 곡명. (文昭殿) (祭享) 때 연주된 이 곡의 악장은 1433년( 15) 12월 창제됐다. 그 곡조는 고려가요 ""의 곡을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延恩殿) "유황곡"의 가사는 이렇다.

"황천이 동방을 돌보사, 성왕(聖王)을 내셨도다. 덕(德)과 인(仁)을 쌓아, 후인(後人)을 도와주시어, 지금에 이르러서도 천명이 새롭도다. 엄숙한 신궁(神宮)이 청정(淸淨)하여, 신주(神主)를 모시니, 신이 편안하시도다. 조종(祖宗)의 신이 이에 오르내리시사, 상제(上帝)의 좌우에 높이 계시니, 신(神)은 내격(來格) 생각할 수 있게 하여 주시니, 열광(烈光)이 있도다. 변두(籩豆)가 진열됐고, 제물이 향기로우니, 신령은 강림하사 흠향하시어, 내 제사를 돌아 보실진저, 복을 두루 내리시되, 이에 만이며 이에 억으로 하시니라. 자자손손에 이르도록 끝없이 보전하시리"라고 『』(樂學軌範 1493)에 나온다.

1447년(세종 29) 당시의 『』(時用俗樂譜)에 전하는 악곡의 하나라고 『세종실록』 권116에 전한다. (1469~1494) 때 "유황곡"은 (鄕樂)을 연주할 (樂工取才)를 위한 시험곡의 한 곡으로 쓰였다고 『경국대전』(經國大典) 권3에 전한다. 이 곡의 번역된 가사는 이렇다.

"오직 황천(皇天)이 사방의 나라를 살피시고/동국(東國)의 백성을 돌보시어/덕(德)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열어주고/귀신과 사람의 주인이 되게 하니/화목(和睦)스런 백성들이 깊은 사랑 우러러 보옵니다/고려(高麗)의 운수가 끝나려 할 때/백성들은 환난(患難)에 빠졌는데/동서로 정벌하여 사방을 평정했소."

② 『』(大樂後譜) 권2에 전하는 이 곡은 청황종평조(淸黃鍾平調) 즉 청황종을 중심음으로 삼은 평조선법(平調旋法)으로 됐다.

숙종 기해년(1719) 『』(進宴儀軌)에 의하면, 1719년(숙종 45) (進宴) 때 연주된 (宴禮樂)의 한 곡으로 연주됐고, 영조 갑자년(1744) 『진연의궤』에 의하면, 1744년(영조 20) 중궁전(中宮殿)과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의 및 영조를 위한 구작행례(九爵行禮)에서 "유황곡"은 제7작의 (進湯) 때 연주됐다.

조선후기 "유황곡"은 성악곡이 아니고 기악곡이다. 현행 "유황곡"의 장단은 불규칙하다. 가락은 의 평조선법으로 됐으며, 5선악보는 『』 권16에 있다.

1930년대 악기편성은 1· 1· 2·젓대 2· 1· 1· 1· 1· 1로 구성됐다. 현행 것은 편종·편경··좌고·박·아쟁·해금·당피리·젓대·당적으로 편성되다.

③ 조선후기 연례악 및 (呈才) 반주음악의 한 곡명. 숙종 기해년(1719) 『진연의궤』에 의하면, 1719년(숙종 45) 숙종의 보령(寶齡)이 육순(六旬)이어서 (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경축하는 잔치가 경현당(景賢堂)에서 열렸을 때, 이 악곡은 제4작의 진탕 절차에서 연주되었다.

영조 갑자년(1744) 『진연의궤』에 의하면, 1744년(영조 20) 영조의 보령이 망육순(望六旬) 즉 51세가 되어 기로소에 입소한 것을 경축하는 잔치가 숭정전(崇政殿)에서 열렸을 때, 이 악곡은 제7작의 진탕(進湯) 절차에서 연주되었다.

1795년(정조 19)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회갑연 및 정조의 등극 20년을 경축하는 잔치가 지금의 수원 소재 화성행궁(華城行宮)의 봉수당(奉壽堂)에서 열렸을 때, 이 악곡은 자궁(慈宮)이 제5작을 들 때 공연한 학무(鶴舞)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692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247, 294, 303, 328, 483, 508, 509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259~60쪽
  • 『進宴儀軌』(1719년), 卷1.15a7, 12
  • 『進宴儀軌』(1744년), 卷1.11a8, 10
  • 『整理儀軌』(1795년), 卷1.47b2~3
  • 『整理儀軌』(1795년), 卷2.8a2
  •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08년, 42~47, 78~86, 144~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