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

김관

[ 金管 ]

요약 클라리넷 연주가·음악평론가. 연전(延專) 음악부원의 한 사람.
김관

1929년에 부임한 현제명(玄濟明)의 지도 아래 곽정선·곽정순·김병모 등과 함께 활동했고, 1930년대 전반기 연희전문의 음악부에서 현제명의 지도 아래 김성태(바이올린)·김대연(코넷)·이유선(성악)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36년 『음악평론』을 발간했고, 1936년 4월호『음악평론』(音樂評論)에서 홍종인·김수향·이정순·김규택과 함께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 소개되었다.

1941년 3월 25일 설립된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의 이사 14명 중 한국인 이사 함화진(咸和鎭)·계정식(桂貞植)·김원복(金元福)·김재훈(金載勳) 및 평의원 홍난파(洪蘭坡)·김세형(金世炯)·이애내(李愛內)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의 글 "감"(感)은 『博文』(1939) 4호에, "라디오음악 방송 비판"은 『朝光』(1937) 23호에, 그의 "都會의 交響曲"이라는 글은 『批判』(1931) 1권 5호에, "레코-드에 의한 음악감상법①~⑤"은 『女性』(1937) 2권 2호~7호에, "레코-드에 의한 음악감상법③"은 『女性』(1937) 2권 4호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中央』(1936) 4권 6호에, "모-리스 라벨"은 『中央』(1936) 4권 7호에, "문학자와 음악"은 『朝光』(1937) 26호에, "문화와 음악: 조선악단의 현상과 비판"은 『人文評論』(1939) 3호에, "벨라 바르톡크"는 『中央』(1936) 4권 9호에, "사교무도(社交舞蹈)와 음악"은 『女性』(1936) 1권 3호에, "성악감상법(상) (중)"은 『女性』(1938) 3권 2호·3호에, "세계적 여류음악가 군상"은 『女性』(1936) 1권 5호·6호·7호에, "수필(隨筆)과 비평(批評)"은 『朝光』(1937) 20호에, "아놀드 세엔베르히"는 『中央』(1936) 4권 8호에, "아미리가(亞米利加) 음악"은 『朝光』(1936) 8호에, "영길리(英吉利) 음악"은 『朝光』(1937) 22호에, "예술(藝術)·역사(歷史)·음악(音樂)"은 『朝鮮文壇』(1935) 22호에, "예술과 오락"은 『博文』(1940) 17호에, "우리 악단을 위하야"는 『四海公論』(1937) 3권 5호에, "유부용독창회"(劉芙蓉獨唱會)와 "채선엽독창회"(蔡善葉獨唱會)는 『비판』(1938) 6권 6호에, "유행가의 제문제"는 『朝光』(1937) 25호에, "음악비평과 연주자"는 『朝鮮文壇』(1935) 23호의 음악시감(音樂時感)에, "음악비평의 중심문제③"은 『비판』(1939) 10권 2호에, "음악소화"(音樂小話)는 『學燈』(1935) 20호에, "음악에는 국경이 없는가?"는 『中央』(1935) 3권 6호에, "음악시평"은 『文章』(1940) 2권 5호에, "음악월평"은 『비판』(1938) 6권 7호에, "이고르 스트라뷘스키"는 『中央』(1936) 4권 5호에, "이태리음악의 특질"은 『朝光』(1937) 21호에, "조선에 있어서의 음악교양의 현상(現狀)"은 『四海公論』(1938) 4권 7호에, "토오키음악"은 『文章』(1939) 1권 5호에, "토오키 미학론(美學論): 토오키음악에 관한 프라라그멘트로서"는 『文章』(1940) 2권 8호에, "풍토와 음악"은 『文章』(1940) 2권 2호에, "하르빈"은 『人文評論』(1940) 5호에, "현대 로서아음악"은 『朝光』(1936) 11호에, "현대 서반아(西班牙)음악"은 『朝光』(1936) 7호에, "현대 독일음악"은 『朝光』(1936) 9호에, "현대 프랑스음악"은 『朝光』(1936) 1권 10호에, "현대음악과 낭만주의"는 『新世紀』(1939) 1권 4호에, 그리고 "현대음악의 미(美)"는 『人文評論』(1940) 4호에 각각 발표되었다. 1940년 7월 7일자 매일신보에 "동아의 신정세와 음악문화의 재발견," "국가의 신체제와 신음악의 건설"(40.7.23~26), "국민, 문화, 음악"(41.7.23~26)이라는 친일 성향의 글을 발표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87~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