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해룡

봉해룡

[ 奉海龍 ]

요약 대금(大笒)·당적(唐笛)·단소연주가. 단소명인.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1호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및 제39호 처용무(處容舞) 예능보유자. 서울 출생. 유의석(劉儀石)에게 사사.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아악사(雅樂師). 전공은 젓대[大笒]. 아악부원양성소(雅樂部員養成所) 제3기 졸업생.
출생 - 사망 1911년 ~ 1995년
봉해룡

1932~1941년 봉해룡은 이왕직아악부 시절 단소·당적(唐笛)·젓대·지(篪)로 단소독주·당적독주·대금독주·2중주·"장춘불로지곡"(長春不老之曲)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1932년 10월 13일 이습회(肄習會)의 제1회 공연 때 "평조회상"(平調會相) "상영산"(上靈山)을 독주한 이후부터 1941년 2월 6일 제100회 공연 때 "만파정식지곡"(萬波停息之曲)을 합주할 때까지 꾸준히 공연활동에 출연하였다.

1945년 8·15광복 직후 이왕직아악부가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로 개칭했을 때, 총무부원인 그는 구왕궁아악부의 부장인 장인식(張寅湜), 총무부원인 성경린·서상운·이덕환·홍원기, 장악부원인 이재천·김보남·김성진, 그리고 교양부원인 이주환·이재천·이덕환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7년 12월에 창단된 조선음악회(朝鮮音樂會)에서 성경린·김준현·이덕환·김성진 등과 방송활동을 전개하였다. 1947년 전속조선음악회(專屬朝鮮音樂會) 정악 분야의 단원으로 문교부 편수국의 장사훈 및 서울중앙방송국의 이혜구·이계원·이덕근·송영호의 도움으로 구왕궁아악부원들과 함께 방송활동을 전개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국군장병을 위문하기 위하여 군예대(軍藝隊) 국악소대 소속으로 활동했다.

1950년 12월 25일 국립국악원의 인사발표 때 장악과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립국악원 장악과장(1950~1951)을 거쳐 1956~1961년 국악사양성소(國樂士養成所)의 기악 강사로 후진을 양성하였다. 1968년 12월 23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의 단소·일무 예능보유자로, 1971년 1월 8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7년 5월 24일 정농악회(正農樂會) 창단연주회의 "영산회상"(靈山會相) 공연 때 출연했고, 1979년 10월 15일 제10회 중요무형문화재 종묘제례악 및 처용무 발표공연 때 출연했으며, 1981년 11월 10일 정농악회의 전통음악연주회 때 출연하였다. 1995년 5월 31일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41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