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보

정간보

[ 井間譜 ]

요약 우리나라 옛 기보법(記譜法)의 하나. 일명 유량악보(有量樂譜).

음가(音價)를 표시할 수 있는 정간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양 최고의 유량악보이다. 우물 정(井)자처럼 생긴 칸에 음의 높낮이를 표기하는 기보법과 함께 사용된 이 기보법은 세종(1418~1450) 때 처음으로 고안됐다. 1행(行)이 32정간으로 이루어진 32정간보는 『세종실록』에 전한다.

1행이 16정간으로 된 16정간보는 세조(1455~1468) 때 처음으로 창안됐다. 이 정간보는 『세조실록』에 전한다. 16정간보에는 3정간·2정간·3정간·3정간·2정간·3정간으로 구분한 육대강(六大綱)이 사용됐다. 32정간보나 16정간보는 모두 음가만을 표시할 수 있는 기보법이다. 음의 고저를 표시할 수 없는 결점(缺點)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두 정간보는 창간됐을 때부터 율자보(律字譜)나 오음약보(五音略譜)처럼 음의 고저를 기보할 수 있는 기보법과 함께 사용됐다.

정간보의 출현 이후 율자보나 오음약보 외 합자보(合字譜)와 육보(肉譜) 같은 음의 고저를 기보할 수 있는 기보법이 정간보와 함께 사용됐다. 1행이 20정간으로 된 정간보도 창안됐지만, 세조 이후 16정간보가 널리 사용됐으니 『시용향악보』·『대악후보』·『금합자보』·『속악원보』 등이 16정간보를 사용한 고악보이다. 다만 『대악후보』(大樂後譜)의 "영산회상"(靈山會相) 및 『속악원보』(俗樂源譜)의 "영산회상"·"여민락"(與民樂)·"보허자만"(步虛子慢)이 20정간보로 기보됐다.

현행 가곡(歌曲)의 정간보는 1행이 16정간으로 된 16정간보에 기보됐다. 오늘날 국립국악원에서 사용하는 정간보는 1정간을 1박으로 잡아서 기보하고 있다. 현행 정간의 해석법이 정간보의 창안 당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지는 앞으로 음악학계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정간보와 비슷한 유량악보는 이웃나라에서도 발견된다. 명나라의 『영성소무보』(靈星小舞譜), 18세기 청(淸)나라 때 판안부호(板眼符號)로 된 『구궁대성보』(九宮大成譜)·『납서영곡보』(納書楹曲譜), 그리고 일본에서 1764년판의32정간으로 된 『금곡지보』(琴曲之譜)와 1779년판의 16개의 박자 기호로 표시된 『금곡대의초』(琴曲大意抄)가 그것이다. 우리나라의 정간보(井間譜)가 중국이나 일본의 유량악보와 역사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세종실록』 권146 소재 "만전춘"

『세종실록』 권146 소재 "만전춘"

『세종실록』 권138 소재 정대업지무악보의 "소무"

『세종실록』 권138 소재 정대업지무악보의 "소무"

『시용향악보』 소재 "정석가"

『시용향악보』 소재 "정석가"

『세조실록』 권48 소재 종묘제례악의 희문지악

『세조실록』 권48 소재 종묘제례악의 희문지악

『앙금신보』 및 『금보』 소재의 만대엽(통문관 및 국립국악원 제공)

『앙금신보』 및 『금보』 소재의 만대엽(통문관 및 국립국악원 제공)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1895~96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305~308쪽
  • 『國樂大事典』 張師勛, 서울: 세광음악출판사, 1984년, 65쪽

관련이미지

대악후보 / 쌍화점

대악후보 / 쌍화점 ≪대악후보≫에 실려 있는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향악곡 악보. 국립국악원 소장.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어

유량악보(有量樂譜), 삼십육정간보(三十六井間譜), 십육정간보(十六井間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