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락

여민락

[ 與民樂 ]

요약 ① 현행 연례악(宴禮樂)의 한 곡명. 아명(雅名)의 관명(管名)은 "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 현명(絃名)은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② 조선후기와 대한제국(1897~1910) 시절 연례악(宴禮樂) 및 정재 반주음악의 한 곡명.

① 현행 연례악(宴禮樂)의 한 곡명. 아명(雅名)의 관명(管名)은 "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 현명(絃名)은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 국립국악원에서 연주되는 현행 관현악곡 중에서 가장 긴 "여민락"의 연주시간이 약 1시간 25분 가량이나 된다. 조선초기에 창제된 "여민락"은 본래 관현악 반주의 성악곡이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노래는 없어졌고 오늘날에는 순수한 관현악곡으로 전승되고 있다. '백성들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즐기는 음악'이라는 뜻의 "여민락"의 내력은 이러하다.

1445년(세종 27) 4월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이 조선왕조의 창업을 노래한 125장으로 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올리자, 그 중에서 수장(首章)·2장·3장·4장 및 졸장(卒章)의 한문 가사에 맞추어 세종대왕은 새로운 음악을 창제했다. 이것이 10장으로 구성된 "여민락"이다.

이 "여민락"은 봉래의(鳳來儀)라는 정재에서 "치화평"(致和平)·"취풍형"(醉豊亨)과 함께 연주됐다. 이러한 창작곡은 모두 중국계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에 바탕을 두고 창제됐다. "여민락"의 악보는 『세종실록』 권140에 전한다.

"용비어천가"의 다섯 장과 "여민락"의 10장은 다음과 같다. (용비어천가의 장수) 및 〈여민락의 장수〉와 한문가사는 다음과 같다.

(수장) 〈1장 해동장(海東章)〉: 해동육용비(海東六龍飛) 막비천소부(莫非天所扶) 고성동부(古聖同符); (2장) 〈2장 근심장(根深章)〉: 근심지목(根深之木) 풍역불항(風亦不抗) 유작기화(有灼其華) 유분기실(有賁其實), 〈3장 원원장(源遠章)〉 원원지수(源遠之水) 한역불갈(旱亦不竭) 유사위천(流斯爲川) 우해필달(于海必達); (3장) 〈4장 석주장(昔周章)〉: 석주대왕(昔周大王) 우빈사의(于豳斯依) 우빈사의 조조불기(肇造不基), 〈5장 금아장(今我章)〉 금아시조(今我始祖) 경흥시택(慶興是宅) 경흥시택 조개홍업(肇開鴻業); (4장) 〈6장 적인장(狄人章)〉 적인여처(狄人與處) 적인우침(狄人于侵) 기산지천(岐山之遷) 실유천심(實維天心), 〈7장 야인장(野人章)〉 야인여처(野人與處) 야인불례(野人不禮) 덕원지도(德源之徒) 실유천계(實維天啓); (졸장) 〈8장 "천세장"(千世章)〉 천세묵정한수양(千世黙定漢水陽) 누인개국(累仁開國) 복년무강(卜年無疆), 〈9장 "자자장"(子子章)〉 자자손손(子子孫孫) 성신수계(聖神雖繼) 경천근민(敬天勤民) 내익영세(迺益永世) 〈10장 명호장(鳴呼章)〉 명호(鳴呼) 사왕남차(嗣王藍此) 낙표유취(洛表遊吹) 황조기시(皇祖其侍).

『세종실록』 권140 소재 여민락보

『세종실록』 권140 소재 여민락보

『경국대전』(經國大典) 권3에 의하면, "여민락"에는 네 종류가 있었다. 당악(唐樂)을 연주할 악공취재(樂工取才)의 시험곡인 "여민락만"(與民樂慢)과 "여민락령"(與民樂令)이 있었고, 향악을 연주할 악공취재의 시험곡인 "여민락만"과 "여민락령"이 그것이다. 『세종실록』 소재의 "여민락"은 당악 "여민락만"이고, 현행 "여민락"은 향악 "여민락만"임이 밝혀진 바 있다.

현행 "여민락"은 『금합자보』(琴合字譜 1572) 소재 "여민락"과 같은 계통인 향악 계열의 악곡이기 때문에 당악 계열의 "여민락만"과 구분되어야 한다. 『금합자보』의 "여민락"은 "용비어천가"의 가사를 지니고 있으므로, 노래와 관현반주가 1572년(선조 5)까지만 해도 함께 연주됐지만, 그 후 노래가 없어졌고 순수 기악곡이 됐다. 현행 "여민락"은 "여민락만"처럼 궁중에서 임금의 거동 때 또한 문덕곡(文德曲) 같은 정재(呈才)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거문고곡의 "여민락"은 『금합자보』·『현금신증가령』(玄琴新證假令 1680)에 전하고, 관보(管譜) 및 현보(絃譜) 16정간보(井間譜)와 율자보(律字譜)로 기보된 "여민락"은 『속악원보』(俗樂源譜) 권4에 전한다.

숙종 기해년(1719) 『진연의궤』(進宴儀軌)에 의하면, 1719년(숙종 45) 숙종의 보령 육순을 축하하기 위한 대전진연(大殿進宴)의 칠작행례(七爵行禮)에서 "여민락"은 진대선(進大膳) 때 처용무(處容舞)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됐다. 영조 갑자년(1744) 『진연의궤』에 의하면, 1744년(영조 20) 중궁전(中宮殿)과 대왕대비전(大王大妃殿)의 내연(內宴) 및 영조를 위한 구작행례(九爵行禮)에서 "여민락"은 진대선 때 연주됐다.

본래 "여민락"은 10장으로 구성됐으나, 현행 "여민락"은 7장까지만 연주되고, 나머지 8·9·10장은 연주되지 않는다. "여민락"의 매 장마다 여음(餘音)을 갖고 있는 점이 이 곡의 특징이다. 아래의 표처럼 본장은 모두 열두 장단으로 구성됐고, 여음은 모두 20장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행 여민락의 원가락과 여음의 장단 일람표

현행 여민락의 원가락과 여음의 장단 일람표
장수 원가락 여음 합계

제1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제2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제3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제4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제5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제6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제7장

12장단

20장단

32장단

합계

84장단

140장단

224장단

현행 "여민락"의 1장에서 3장까지의 속도는 아주 느리고, 그 가락도 매우 복잡하다. 4장부터 7장까지의 속도는 앞부분에 비해 매우 빠르고 가락의 진행도 그리 복잡하지 않다. 속도가 느린 앞의 세 장은 옛 음악에 비해서 많은 샛가락이 첨가됐기 때문에 복잡한 선율진행을 보여주지만, 속도가 빨라지는 4장 이하 7장까지는 비교적 옛 가락과 리듬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4장 이하 빨라지는 속도를 급박(急拍)이라고 불렀다. 1장부터 3장까지의 장단은 20박을 한 주기로 된 20박장단이지만, 4장부터 7장까지는 10박장단이다. 선율의 형태는 대개 반복되는 같은 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행 "여민락"의 기본 악기편성은 향피리·젓대·해금·장구·좌고·거문고·가야고·양금으로 구성된다. 아쟁소금(小笒: 예전엔 당적)이 첨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악기편성은 관악 편성의 "승평만세지곡"(昇平萬歲之曲)의 경우이다. 현악 편성의 "오운개서조"(五雲開瑞朝)는 현재 국립국악원에서 잘 연주되지 않는다. 1930년대 "승평만세지곡"의 악기편성은 편종·편경·향피리·젓대·당적·해금·아쟁·장구·좌고로 구성됐다. "오운개서조"의 경우는 거문고·가야고·해금·양금·비파·쟁 같은 현악기로만 편성됐다. 현행 "여민락"의 악기편성은 1930년대의 현악편성과 관악편성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여민락"의 연주 때 주선율을 이끌어 가는 악기는 향피리다. 향피리의 황종은 영산회상이나 가곡(歌曲)의 황종처럼 E이다. 출현음은 황종(E태주(F)·협종(G중려(A임종(B남려(C)·무역(D), 이상 7음음계로 됐다. 이 7음음계에서 협종(夾鍾)과 무역(無射)은 2장 여음에서 각각 한 번씩 출현됐으므로, "여민락"의 주요음은 황종(E)·태주(F)·중려(A)·임종(B)·남려(C), 이상 5음음계로 구성됐다. 따라서 5음음계의 평조로 된 "여민락"은 옛 가집(歌集)에서 평조(平調)를 정대화평(正大和平)하고 웅심화평(雄深和平)하다고 했듯이 아주 평온하고 깊은 경지로 이끄는 매력을 지닌 관현악곡이다.

② 조선후기와 대한제국(1897~1910) 시절 연례악(宴禮樂) 및 정재 반주음악의 한 곡명. 1719년(숙종 45) 숙종의 보령이 육순(六旬)이어서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한 것을 경축하는 잔치가 경현당(景賢堂)에서 열렸을 때, 그리고 1744년(영조 20) 영조의 보령이 망육순(望六旬) 즉 51세가 되어 기로소에 입소한 것을 경축하는 잔치가 숭정전(崇政殿)에서 열렸을 때, 이 악곡은 처용무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1795년(정조 19)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회갑연 및 정조의 등극 20년을 경축하는 잔치가 지금의 수원 소재 화성행궁(華城行宮)의 봉수당(奉壽堂)에서 열렸을 때 공연된 몽금척(夢金尺)·무고(舞鼓)·수명명(受明命)·수연장(壽延長)·연화대(蓮花臺)·포구락(抛毬樂)·하황은(荷皇恩)·학무(鶴舞)·헌선도(獻仙桃)의 반주음악으로 연주되었다.

1902년(광무 6) 11월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망육순(51세) 및 등극 40년을 경축하는 잔치가 경운궁(慶運宮) 즉 지금의 덕수궁 중화전(中和殿)에서 열렸을 때, 이 악곡이 연주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524~26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248, 250~52, 305, 325, 327, 369, 472, 484, 485, 508쪽
  • 『악학궤범용어총람』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10년, 218~19쪽
  • 『進宴儀軌』(1719년), 卷1.15b7
  • 『進宴儀軌』(1744년), 卷1.11b3, 4
  • 『整理儀軌』(1795년), 卷2.6a11, 7a5, 7b4, 12, 8a2, 3, 4, 5
  • 『進宴儀軌』(1902. 11.), 卷1.49b7(上.252)
  •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08년, 42~47, 78~86, 144~56, 698~711쪽

참조어

여민락향(與民樂鄕) , 해령(解令) , 향악여민락령(鄕樂與民樂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