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

양금

[ 洋琴 ]

요약 철사로 제조된 우리나라 유일의 현악기. 일명 천금(天琴)·철사금(鐵絲琴)·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번금(蕃琴)·서양금(西洋琴)·구라금(歐羅琴)·구라현소금(歐邏絃小琴).

현명악기(絃鳴樂器, chordophone)에 드는 양금은 서양의 덜시머(dulcimer)와 같은 종류의 현악기이다. 근동(近東) 지방에서 유래됐다.

고대 아시리아(Assyria)와 페르시아(Persia)에서 기원된 이 현악기는 세 방향으로 전파됐다. 한 갈래는 12세기 무렵 스페인과 서부 유럽에 전파됐고, 둘째 갈래는 터키와 헝가리에 전파됐으며, 셋째 갈래는 16세기 경 중국에 소개된 것이 청나라 때 한반도까지 전래됐다.

청나라 만역(萬曆 1573~1619) 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양금을 중국에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 후 이 현악기는 영조(1724~1776) 때 연경(燕京)을 방문한 조선의 사신 일행이 우리나라에 소개하였다. 이규경(李圭景)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에서 6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양금이 소개됐다고 했다. 박지원(朴趾源)의 『연암집』(燕巖集)에서 1772년(영조 48) 홍대용(洪大容)이 양금을 연주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밝혔다.

홍대용과 양금 관련 기사는 박지원의 「동란섭필」(銅蘭涉筆)에 이렇게 전한다.

"이 악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가 언제인지 알 수는 없고, 토조(土調)로 해곡(解曲)한 것은 홍덕보(洪德保: 홍대용)로부터 비롯되었으니, 건륭(乾隆) 임진년(1774) 6월 18일이다. 나는 덕보(德保)의 서재인 담헌(湛軒)에 앉아서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해곡하는 것을 보았다. 덕보가 얼마나 심음(審音)에 예민한지 그때 보았으니, 해곡이 비록 조그만 기예이지만 창시(創始)에 해당되기 때문에 내가 굳이 그 일시를 상세히 기억하는 것이다. 양금을 연주하는 법이 그로부터 널리 전해져서, 지금까지 9년 사이에 금사(琴師)들은 누구나 그것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홍대용의 『담헌서』(湛軒書) 소재 「악기」에 양금 관련 기사는 이렇게 전한다.

"양금은 서양으로부터 나왔는데, 중국이 모방하여 사용하였다. 오동나무판에 쇠줄을 달았으니, 그 소리가 쟁쟁하여 멀리서 들으면 종(鍾)·경(磬)과 같은데, 다만 지나치게 크고 세며, 경박하고 날리는 소리에 가까워 금이나 슬에 미치지 못함이 심하다. 작은 것은 12현이고 큰 것은 17현이다. 큰 것은 그 소리가 더욱 웅장하고 맑다"라고.

정조(1776~1800) 때 전악(典樂) 박보완(朴輔完)이 연경(燕京)에서 양금(洋琴)의 연주법을 배워서 우리 곡을 연주하여 그 연주법을 전수했다고 『구라철사금자보』에서 기술하였다. 이 양금이 궁중에서 처음으로 연주된 때는 1829년(순조 29)이다. 그 이후 양금차비(洋琴差備)들이 진연(進宴)·진찬(進饌)·진작(進爵) 때 연례악(宴禮樂)을 연주했다고 여러 의궤(儀軌)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조선후기 의궤에 나오는 장악원(掌樂院)의 양금차비 일람표

조선후기 의궤에 나오는 장악원(掌樂院)의 양금차비 일람표
서기(임금) 잔치명 양금차비(洋琴差備)

1829년(순조 29)

진찬(進饌)

문명신(文命新), 박경완(朴景完)

1848년(헌종 14)

진찬(進饌)

차홍신(車弘信)

1868년(고종 5)

내진찬(內進饌)

정구환(鄭龜煥)

1873년(고종 10)

진작(眞勺)

박화영(朴和永)

1877년(고종 14)

진찬(進饌)

김상혁(金相赫)

1887년(고종 24)

진찬(進饌)

안백용(安白用)

1892년(고종 29)

진찬(進饌)

이순동(李淳同)

1901년(광무 5) 5월

진찬(進饌)

전수복(田壽福)

1901년(광무 5) 7월

진연(進宴)

전수복(田壽福)

일제강점기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를 거쳐 광복 후 국립국악원에 전승된 양금은 "영산회상"(靈山會相) 등의 관현합주에도 쓰이고, 단소(短簫)와 병주(併奏)되기도 한다.

양금의 몸통은 오동나무로 제조되고 뚜껑은 화리(華梨)를 붙여서 만든다. 줄은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제조된다. 사다리꼴의 몸통의 좌우에 두 개의 주(柱)가 있고, 왼쪽 괘(棵)의 좌우현(左右絃)과 오른쪽 괘의 좌현(左絃)만 쓰인다. 네 줄이 한 벌을 이루고, 14벌의 줄이 악기의 주 위에 좌우로 나열되어 있으며, 대나무로 만든 가드다란 채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낸다. 각 줄의 음정을 정리하여 구음과 함께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양금의 줄에서 나는 소리의 12율명과 구음 일람표

양금의 줄에서 나는 소리의 12율명과 구음 일람표
구분 왼쪽괘 왼쪽줄 왼쪽괘 오른쪽줄 오른쪽괘 왼쪽줄

제1현

林鍾

黃鍾

濁黃鍾

제2현

南呂

太簇

濁太簇

제3현

無射

夾鍾

濁夾鍾

제4현

淸黃鍾

仲呂

濁仲呂

제5현

淸太簇

林鍾

濁林鍾

제6현

淸姑洗

-

南呂

-

濁南呂

제7현

淸仲呂

無射

-

濁無射

-

위의 표에 정리됐듯이 전통적 양금의 조율은 고선(姑洗)과 응종(應鍾) 두 음이 없기 때문에, "영산회상"(靈山會相)의 "군악"(軍樂) 연주 때 양금이 쓰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요즈음에는 두 음을 낼 수 있도록 양금의 제3현과 제4현 사이에 한 줄을 첨가해서 제조하기도 한다.

현행 양금의 구조와 부분명(『한국악기』)

현행 양금의 구조와 부분명(『한국악기』)

연주자는 악기의 뚜껑을 악기 밑에 깔 때 몸통의 넓은 부분을 연주자 앞에 오도록 악기를 놓는다. 가느다란 대나무로 만든 채를 오른손 모지(母指)·식지(食指)·장지(葬地)로 가볍게 쥐고서 채의 끝으로 줄을 야무지게 쳐야 한다. 줄을 치고 난 뒤 그 채끝이 민첩하게 줄에서 떼어야 한다. 양금 연주자가 하나의 채로 연주하는 것이 양손의 채로 연주하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양금 연주법이 다른 점이다.

앙금의 음역

앙금의 음역

양금을 연주하는 국립국악원의 김천흥 악사(『한국악기』)

양금을 연주하는 국립국악원의 김천흥 악사(『한국악기』)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4.1487~90쪽
  • 『의궤 속의 우리 춤과 음악을 찾아서』 송방송, 서울: 보고사, 2008년, 347, 373, 403, 441, 486, 545쪽
  • 『樂人列傳』 허경진, 서울: 한길사, 2005년, 574쪽
  • 『조선민족음악가사전』, 延邊: 延邊大出版社, 1998년, 48쪽
  • 『韓國樂器』 송혜진 글 강운구 사진, 서울: 열화당, 2001년, 109, 156쪽

참조어

서양금(西洋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