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박지원

[ 朴趾源 ]

요약 실학자(實學者). 정조(1776~1800) 때 문사(文士). 자는 미중(美仲)·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연상(煙湘).
출생 - 사망 1737년 ~ 1805년

서울 반송방(盤松坊) 야동(冶洞)에서 출생한 그는 1768년 백탑(白塔) 근처로 이사하여 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 등과 학문적으로 교류했고, 이 무렵 (洪大容)·이덕무(李德懋) 등과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대하여 자주 토론하였다.

1780년(정조 4)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북경을 다녀와 『』(熱河日記)를 썼다. 박지원과 철현금(鐵絃琴) 관련 기사는 박지원의 아들 (朴宗采)의 『』(過庭錄)에 이렇게 전한다.

"아버님께서는 소리를 아는 데 정통하셨으며, 담헌(湛軒: 홍대용)도 악률(樂律)을 잘 이해하였다. 하루는 아버님께서 담헌의 방에 계시다가 들보에 걸려 있는 (歐邏鐵絃琴)을 보셨다. 아마도 중국 사신(使臣)이 해마다 우리나라에 오기 때문에 그 편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 악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님께서 시자에게 명하여 그 철현금을 타보게 하셨다. 담헌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금을 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아버님께서 작은 판자로 만지면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이나 가져와서 줄을 따라 튕겨보게나. 철현금이 제대로 골라졌는지 시험해보세나'라고 하였다. 아버님께서 두어 번 어루만지니 곡조가 과연 들어맞아 틀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철현금이 비로소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라고.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