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홍

박지홍

[ 朴枝洪 ]

요약 성악가(판소리). 판소리명창. 전남 나주(羅州) 출생.
출생 - 사망 1889 (또는 1884)년 ~ 1961 (또는 1958)년

12세 때부터 판소리명창 김창환(金昌煥)의 를 따라 다니며 장단을 익히다가 후에 소리로 전향하여 명창이 된 그는 (朴基洪)과 종형제간이고. 박기홍의 수행고수(隨行鼓手)로 활동하다가 소리로 전환하여 박기홍의 을 이어 받았다.

1909년 (圓覺社)의 폐지 이후 김창환협률사(金昌煥協律社)라는 사설 유랑창극단에서 그는 ··· 등 50여 명의 단원과 함께 주로 지방에서 공연활동을 전개하다가 1910년 한일합방의 소식을 들은 후 경상도 남해(南海)공연을 끝으로 해산하였다.

27세 때부터 대구(大邱)에 거주하면서 활약했기 때문에 서울에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구의 (達城券番)에서 소리사범을 지냈고, 후에 경북국악원(慶北國樂院)의 사범으로 있으면서 소리뿐 아니라 기악을 가르쳤으며, 제1회 (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를 잘했다는 그는 여류명창 ··김화선·고금선을 가르쳤고, (朴東鎭)도 박지홍에게 흥보가를 배웠다고 한다. "해방가"(解放歌) 등 17곡의 노래를 창작한 박지홍은 대구 남산동 자택에서 1958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70~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