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문

김정문

[ 金正文 ]

요약 성악가(판소리). 판소리명창. 전북 남원(南原) 출생. 유성준(劉成俊)·장자백(張子伯)의 생질. 김채만(金采萬)의 제자.
출생 - 사망 1887년 ~ 1935년
김정문

유성준·송만갑·김채만에게 소리를 배웠다. 협률사(協律社)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김채만을 만나 배워 더늠을 전승하였다. 동편제(東便制) 소리를 하는 송만갑의 고수로 활동하면서 그의 소리를 익히게 됐고, 결국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서편제(西便制) 김채만의 소리를 듣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운 뒤, 동편제와 서편제의 맛을 섞어서 독창적인 소리를 하였다.

타고난 재주는 적었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명창이 됐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창극에도 솜씨가 있어 상경해서는 창극공연에도 참가해 크게 인기를 모았다. 특히 흥보가·심청가·적벽가를 잘했고, 단가 "홍문연가"(鴻門宴歌)를 잘 불렀다. 남원에 있을 때는 많은 제자를 길렀다. 그 가운데 박녹주(朴綠珠)·김준섭(金俊燮)·강도근(姜道根)·박초월(朴初月) 등은 당대 명창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소리꾼들이 부르던 "사거리"를 신방초가 편곡하여 화초 대목을 넣어 만든 "화초사거리"의 멋들어진 가락에 많은 소리꾼이 생겼다. 신방초(申芳草) 이후 그는 장판개(張判介)·조진영(趙鎭榮)과 함께 잡가명창 중 한 사람이었다.

1910년 송만갑협률사(宋萬甲協律社)가 해산되자 광주 속골의 김채만을 찾아가 소리지도를 받고 협률사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12년 전남 광주(光州)에서 지방 출신의 명창으로 조직된 광주협률사(光州協律社)에서 김채만의 문도인 김억순·안영환·박화섭·전일도 등과 함께 1920년대까지 8년 동안 지방에서 창극활동을 전개하다가 해산한 후 1920년 남원권번(南原券番) 소리선생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6월 논산의 독자위안회에 신갑진 등과 함께 출연했고, 그가 취입한 흥부전의 "박타령"·"춘향전"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가 취입한 "광한루(廣寒樓)의 가연"(佳緣) 등 판소리의 여러 눈대목은 시에론음반에 전한다.

1929~1935년 남도단가(南道短歌)·남도잡가(南道雜歌)·남도창·단가·"심청가"·"장부한"(丈夫恨) 등 여러 곡을 방송하기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1931년 7월 1일 경남 통영(統營)의 봉래좌(蓬萊座)에서 열린 명창대회 때 송만갑·김추월·이화중선과 함께 출연하였다. 1935년 49세로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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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문 『정선조선가요집(精選朝鮮歌謠集)』. 1936 출처: 한국전통연희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