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섭

김준섭

[ 金俊燮 ]

요약 성악가(판소리). 판소리명창. 국립국극단(國立國劇團) 단원. 전남 곡성(谷城) 또는 옥과(玉果) 출생.
출생 - 사망 1913년 ~ 1968년
김준섭

정응민(1894~1961) 문하생으로 보성소리를 전승했다.

어려서 장판개(張判介)의 문하에서 판소리 학습을 시작했고, 공창식(孔昌植)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김정문(金正文)에게 흥보가·춘향가·수궁가·적벽가를 배웠으며, 몇 년 동안 흥보가와 춘향가를 배운 뒤 산사에 들어가 독공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순천·광주·목포에서 활동하다가 1935년에 상경하여 1936년 2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의 직속단체로 창극좌(唱劇座)가 창단됐을 때 조농옥·조상선·한주환 등과 함께 창극활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하창운이 창단한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 주최 "일목장군"(一目將軍) 공연 때 그는 안기옥·오태석·임방울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39년 박석기화랑창극단(花郎唱劇團)에서 임방울·정광수·신영채 등과 함께 "봉덕사의 종소리" 공연 때 출연하였다. 김연수·김옥련·박녹주 등과 함께 오케고악단 반주로 취입한 "곽씨부인 영면"을 포함한 심청가의 여러 눈대목은 오케음반에 전한다. 1940년 단가 "범피중류"(泛彼中流)·"죽장망혜"(竹杖芒鞋)·창극조 "심청가" 및 1941년 창극 "초동"(樵童)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였다.

1943년 9월 제일극장에서 이운방(李雲芳)의 창작 창극 "남강의 풍운"으로 동일창극단의 창단공연을 가졌을 때 안기옥·오태석·임방울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7년 이후에는 국악사(國樂社)에서 창극활동을 하는 등 주로 지방에서 창극과 판소리공연에 출연하였다.

1960년부터 지방에 살면서 판소리 공부에 전념한 김준섭의 장기는 심청가이고, 특히 심봉사가 황성의 봉사잔치에 참가하기 위해 뺑덕어멈을 앞장세우고 가는 대목을 잘했다.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 및 국립국극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62년 창단된 국립국극단 주최 제1회 창단기념 창극 대춘향전공연 때 그는 단장인 김연수 및 단원인 김소희·박귀희·강장원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227~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