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좌

창극좌

[ 唱劇座 ]

요약 조선성악연구회의 직속단체.

1936년 2월에 창립된 창극좌의 단원은 (吳太石)·(丁南希)·(趙相鮮)·(林芳蔚)·(金演洙)·(申快童)·(姜太弘)··(金世俊)·(金載先)·(韓周煥)·(鄭珖秀)·(金俊燮)·(林素香)·(朴綠珠)·(朴初月)·(金素姫)·(曺弄玉)·(金任洙)·(金珠)·(金玉妍) 등이었고, (李東伯)이 총지휘를 맡았고, (金容承)이 기획을 담당하였다.

1936년 3월 23~25일 (東洋劇場)에서 열린 창립기념공연 때 창극 이외 (伽倻琴併唱)·서도좌창(西道座唱)·(僧舞)·검무(劍舞)·(春鶯囀)도 포함됐다. 그 후 흥부전(興夫傳)·(淑英娘子傳)·(水宮歌)·(裵裨將傳)·(雍固執傳) 등을 창극좌가 공연하였다.

1942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警務局)의 압력으로 인하여 창극좌는 (花郞唱劇團)과 통합되어 (朝鮮唱劇座)로 개칭됐다. 당시의 단장은 (鄭寅奎)였고, 박석기(朴錫紀)와 허순구(許舜九)가 지도했으며, 사설과 고증 및 창곡(唱曲)은 최남선(崔南善)·이보상(李輔相)·정노식(鄭魯湜)·이광수(李光洙)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2085~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