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성악연구회

조선성악연구회

[ 朝鮮聲樂研究會 ]

요약 일제강점기 전통공연단체의 하나.

판소리명창의 사설단체인 조선성악연구회의 전신은 1934년 4월 24일 (朝鮮音律協會)의 후신으로 창설된 조선성악원(朝鮮聲樂院)이다. 1930년에 설립한 조선음률협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해체되자, (金楚香)의 후원자 김종익(金鍾翼)이 제공한 가옥 한 채를 계기로 ·······김초향·· 등은 1934년 4월 24일 조선성악원을 창설하고, 5월 1일 특별성악대회를 공회당에서 개최했다. 그 후 5월 11일 이동백(李東伯)을 비롯해 (姜太弘)·(金東岡)·(金容承)·김종기(金鍾基)·김창룡(金昌龍)·김채련(金彩蓮)·박녹주(朴綠珠)·(宋萬甲)·심상건(沈相健)·오태석(吳太石)·정정렬(丁貞烈)·한성준(韓成俊), 이상 14명의 발기로 조선성악원을 조선음악연구회로 개칭하여 공평동(公平洞) 24번지에서 다시 출범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라는 명칭은 1934년 10월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서 3회 공연이 열릴 때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 조선성악연구회의 주소는 1934년 9월 관훈동(寬勳洞) 4번지였고, 1936년 낙원동(樂園洞)으로 옮겼다가 1937년부터 1940년까지는 익선정(益善町) 159번지였다. 조선음악연구회를 조선성악연구회로 바꾼 이유는 이 단체가 조선성악의 진흥과 보급을 목표로 정했기 때문이다.

창립 당시의 단원은 명창 이동백·송만갑·정정렬·김창룡을 중심으로 한성준·오태석·····강태홍·······강성재· 및 여류명창 ········박소군 등이었고, 전성기에는 130여 명의 단원을 거느렸다.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의 회원들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의 회원들

창립 초기 조선성악연구회의 공연활동은 크게 두 갈래고 구분된다. 첫째는 재래의 판소리를 가극화시킨 창극과 새로운 소재의 창극을 무대화시키는 작업이었고, 둘째는 전국 대도시에서 판소리명창대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창립 초기부터 조선성악연구회는 (東洋劇場)을 중심으로 창극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고, 1934년 가극(歌劇) 춘향전이 대중의 인기를 끌자, 같은 해 11월 창극 흥보전을 선보였고, 1936년 2월 창극 배비장전(裵裨將傳)을 무대에 올렸다. 1936년 (府民館)과 광무극장(光武劇場)에서 연쇄창극(連鎖唱劇) 유충렬전(劉忠烈傳) 및 동양극장에서 가극 춘향전·흥보전·심청전을 무대에 올려 관중의 인기를 끌었다.

1937년에는 평양의 금천대좌(金千代座)에서 춘향전과 심청전을 무대에 올렸다. 동양극장에서는 가극 배비장전·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편시춘·춘향전을 무대에 올렸으며, 1938년에는 동양극장에서 가면극 토끼타령과 가극 옹고집전(雍固執傳) 및 창극 농촌야화(農村夜話)를 무대에 올렸다.

조선성악연구회 주최로 공연한 창극종목 일람표

조선성악연구회 주최로 공연한 창극종목 일람표
창극 종목 연월일 기간 공연 장소

춘향전(春香傳)

미상

미상

동양극장

흥보전(興甫傳)

1934.11.6

1일간

동양극장

배비장전(裵裨將傳)

1936.2.9~11

3일간

동양극장

유충렬전(劉忠烈傳)

1936.6.8~11

4일간

부민관

춘향전(春香傳)

1936.9.24~28

5일간

동양극장

유충렬전(劉忠烈傳)

1936.10.2~3

2일간

광무극장

흥보전(興甫傳)

1936.11.6~10

5일간

동양극장

심청전(沈淸傳)

1936.12.15~17

3일간

동양극장

심청전과 춘향전

1936.12.18~20

3일간

동양극장

심청전과 춘향전

1937.1.31~2.2

3일간

금천대좌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1937.3.26~4.4

7일간

동양극장

배비장전(裵裨將傳)

1937.3.3

1일간

동양극장

편시춘(片時春)

1937.6.10~14

5일간

동양극장

춘향전(春香傳)

1937.9.12~16

7일간

동양극장

토끼타령(가면극)

1938.3.13~17

5일간

동양극장

옹고집전(雍固執傳)

1938.8.8~12

5일간

동양극장

농촌야화(農村夜話)

1938.10.4~5

2일간

동양극장

심청전과 춘향전

1939.10.7~16

11일간

동양극장

옥루몽(玉樓夢)

1940.2.20

며칠간

제일극장

1936년 2월 배비장전이 동양극장에서 공연됐을 때 출연자는 송만갑·이동백·김창룡·정정렬·한성준·정원섭·박종기·오태석··김용승·박종기·오태석···김소희·조소옥·····신숙···임소향이었다고 조선일보 1936년 2월 8일자에 전한다.

1936년 6월 부민관에서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연쇄창극 유충렬전 공연 때 출연자는 정남희(유충렬)·(충렬 부인)·강태홍(정한담)·조상선(최일귀)·오태석(충렬 아버지)·이동백(충렬 장인) 등이었다고 조선일보 1936년 5월 26일자에 전한다. 당시 동양극장에서의 창극 공연 때 관현반주가 따랐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1940년 2월 20일 조선성악연구회 주최 창극 옥루몽(玉樓夢)이 제일극장(第一劇場)에서 공연됐을 때, 관현반주자는 강태홍··박종기·신쾌동·정원섭·조상선·한갑득·한성준이었다.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의 야유회 기념

1930년대 조선성악연구회의 야유회 기념

1939년 외 ··(半島唱劇團)이 새로 생겨 서로가 경쟁을 하다가 1942년 화랑창극단은 창극좌와 병합했다. 이즈음 판소리 다섯마당 이외 배비장전·유충렬전·(薔花紅蓮傳) 등의 고대소설 및 창극화한 사극(史劇) "마의태자"(麻衣太子)·""(黃眞伊)·"백제의 "(落花岩)·"재봉춘"(再逢春)·"빈부"(貧富) 등이 이 연구회의 회원으로 구성된 창극단체에 의해서 공연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1939~40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572~78쪽
  • 『文藝總鑑』,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년, 274, 289쪽

관련이미지

1938년 조선성악연구회 제5주년 기념 원유회(遠遊會) 단체 사진

1938년 조선성악연구회 제5주년 기념 원유회(遠遊會) 단체 사진 『창본 춘향가』. 국악예술학교 출판부. 1967 출처: 한국전통연희사전

참조어

조선성악원(朝鮮聲樂院), 조선음악연구회(朝鮮音樂研究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