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창극단

조선창극단

[ 朝鮮唱劇團 ]

요약 ① 일제강점기 설립된 사설창극단의 하나.
② 안기준(安基俊)이 설립한 사설 창극단.

① 일제강점기 설립된 사설창극단의 하나. 1942년 가을 에서 조선창극단의 창립대회를 가졌다. 1943년 1월 문화극장에서 이운방(李雲芳) 작, (朴珍) 연출의 "항우(項羽)와 우미인(虞美人)," 및 춘향전을 공연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연쇄창극 유충렬전(劉忠烈傳)을 공연했으며, 1943년 5월에는 (朴英珍)의 "고란사의 종소리" 및 (金亞夫)의 "보은표" 그리고 가을에는 박진 작 및 연출의 장화홍련전을 무대에 올렸다.

1944년에는 조선이동창극단(朝鮮移動唱劇團)으로 개칭하고 지방공연에 나섰고, 1945년에는 조선창극단의 이름으로 제일극장에서 박영진의 창작 창극 "환하야화"(渙河夜話)와 장화홍련전 공연을 끝으로 창극활동의 막을 내렸다.

② (安基俊)이 설립한 사설 창극단. 1948년에 설립된 조선창극단은 당시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긴 (金演洙唱劇團)·(國劇社)·(國劇協會) 등 여러 창극단과 함께 활동했다. 이 창극단의 이름이 해방 직후의 조선창극단과 같으나 단원의 구성은 전혀 달랐다.

이 창극단의 단원은 ········김녹주·····였다. 이들은 창작 사극 작, 박진 연출의 "논개"(論介)와 "왕자호동"(王子好童)을 서울서 공연한 후 이어서 여수 지방공연에 나섰다가 콜레라에 걸려 한영호가 죽자 곧 해산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5.1960, 2079~83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578~79쪽

참조어

조선창극좌(朝鮮唱劇座) , 이동창극단(移動唱劇團), 조선이동창극단(朝鮮移動唱劇團), 창극단(唱劇團), 국립창극단(國立唱劇團) ,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 , 화랑창극단(花郞唱劇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