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창극단

동일창극단

[ 東一唱劇團 ]

요약 일제강점기 사설 창극단(唱劇團)의 하나.

1939년 9월 이 창단한 이 창극단의 창단원은 (安基玉)·(吳太石)·(林芳蔚)·(鄭珖秀)·(申永彩)·(金俊燮)·(洪甲壽)·(姜道根)·(金俊玉)·(朴初月)·(朴貴姬)·(康南月)·(朴二淑)·(朴山月)·(韓愛順) 등이었다.

창단 당시 (花郞唱劇團)이 "봉덕사(奉德寺)의 종소리"로 인기를 끌자 동일창극단은 에서 (金亞夫) 작 및 연출의 ""(一目將軍)으로 창단공연의 막을 올렸다. 창단공연 때 박귀희(朴貴姬)가 아리주(阿里珠) 역을 맡았고, 그 후 춘향전 공연 때 박초월(朴初月)이 춘향 역을 맡고 이도령역을 박귀희가 맡아 장안의 인기를 모았다. 1943년 4월 동일창극단의 제1회 공연종목은 (金容承) 각색의 "흥보전"과 "총후 국민 및 귀환병의 가정"이었다.

1943년 9월 제일극장에서 이운방(李雲芳)의 창작 창극 "남강의 풍운"으로 창단공연을 가졌고, 같은 해 10월 에서 김용승(金容承) 각색의 "춘향전"을 공연했으며, 연말에는 제일극장에서 창작 창극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을 무대에 올렸다. 1944년 흥보전 공연 때 효과창(效果唱)을 맡은 정광수(鄭珖秀)가 부른 ""에 나오는 조선국의 가사 때문에 일본 경찰에 끌려가 탄압을 받기도 했지만 해방 전까지 창극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44년 지방공연에 열중한 동일창극단은 동양극장에서 김아부 작 "일목장군"을 무대에 올렸고, (李瑞求) 작 친일어용극 "결전일족"(決戰一族)을 공연하였다. 동양극장에서 김건(金健) 작의 창작사극 "김유신전"(金庾信傳)의 공연을 끝으로 1945년에는 "흥보와 놀보"를 재공연한 후 동일창극단은 해산됐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용어론』 송방송, 권2.679~80쪽, 권5.2079~83쪽
  • 『증보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서울: 민속원, 2007년, 579쪽
  • 『文藝總鑑』, 서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년, 274, 2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