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옥

안기옥

[ 安基玉 ]

요약 가야금 연주가. 가야금산조(伽倻琴散調) 명인. 평양음악무용대학(平壤音樂舞踊大學) 민족음악학부의 강좌장. 국립고전예술극장 총장. 전남 나주군 남평면 대교리 출생.
출생 - 사망 1894년 ~ 1974년
안기옥

나주 신청(神廳) 재인 출신으로 꽹과리와 피리명인인 아버지 안영길(安永吉)의 큰아들로 태어난 그는 8세 때 김달진의 지도로 가야금곡 "다스름"과 "심방곡" 및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1902년 겨울부터 단가나 가야금병창 "백로형광"을 익혀 12세 때 처음으로 연주회에 출연하였다. 그 후 맹인연주가 김복실(金福實)에게 "영산회상"을 배웠다.

1911년 광주(光州)에 올라와 전주예기조합(全州藝妓組合)의 사범인 김창조(金昌祖)에게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구성된 심방곡(산조)을 비롯해 거문고·아쟁·장고·꽹과리도 함께 사사했다. 1915년 박기남에게 거문고곡의 "풍류"·"회상"·"별곡"을 익혔고, 백낙준(白樂俊)에게서 거문고산조를 배웠다.

1916년부터 남원협률사(南原協律社)를 중심으로 연주활동을 벌리다가 고향 나주군의 남평에 내려가 정남희(丁南希)를 포함한 후진을 양성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죄로 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1925년 상경해 무대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1926년 일본인을 위한 연주를 거절했다고 구류 당하기도 했다. 1927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 개원 초창기부터 출연해 가야금산조를 방송했다.

1930년부터 목포극장에서 협률단을 지도했다. 1930년대 초부터 박동실(朴東實)과 함께 광주·함흥·청진을 비롯해 여러 도시를 다니며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공기남·임소향·김소희 등의 명창을 길러냈다. 1930년 이동백(李東伯) 등과 함께 조선음악연구회(朝鮮音樂研究會)를 조직했다. 1930년대 후반기 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에서 활동했으며, 1936년 함흥(咸興)에서 권번(券番)을 꾸렸다.

1936년 한성준의 조선음악무용연구소(朝鮮音樂舞踊研究所)의 단원으로 일본 순회공연 때 활동했다. 1939년 하창춘이 창단한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 주최 "일목장군"(一目將軍) 공연 때 그는 오태석·임방울·정광수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0년부터는 한양창극단(漢陽唱劇團)을 만들어 춘향전 등 고전작품을 각 지방에서 순회 공연했다. 국내공연뿐 아니라, 일본 규슈·오사카를 비롯해 재일조선인을 위한 순회공연을 전개하였다.

1943년 9월 제일극장에서 이운방(李雲芳)의 창작 창극 "남강(南江)의 풍운(風雲)"으로 동일창극단의 공연 때 오태석·임방울·정광수 등과 함께 출연했다. 1944년 최승희무용단(崔承喜舞踊團)의 음악단장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그가 취입한 가야금독주·진양조는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그는 가야금병창(伽倻琴併唱)·가야금산조·고수·남도단가(南道短歌)·산조·창극조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45년 창극단을 조직해 운영하다가 미군정청(美軍政廳)에 의해 해산됐다. 1946년 6월 월북한 후 1947년 조선고전악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춘향전(1947)·흥보전(1948)을 공연했으며, 1951년 3월 결성된 조선음악가동맹(朝鮮音樂家同盟)의 상무위원 겸 고전음악 분과위원장을 맡았다.

1952년 공훈배우가 됐고, 1954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됐으며, 1959년 인민배우가 되었다.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민족음악연구소 소장, 평양음악무용대학 민족음악학부 기악강좌장을 역임했고, 가요 "불멸의 금강"·합창곡 "수송대의 노래" 등 여러 편의 노래 및 기악곡 "새봄"·"새로운 결의" 등을 창작했으며, 창극 "선화공주"·"황해의 노래"·장화홍련전의 창작에 참여하였다.

한숙구(韓淑求)의 산조를 전승한 그의 산조는 정남희를 거쳐 김윤덕(金允德)에게 전승되었다. 춘향전·심청전·흥부전·"배뱅이"·장화홍련전 등의 창극 발전에 기여했고, 민족관현악합주 "조국산천," 민족기악중주 "새봄"(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특등상 입상)을 비롯해 많은 민족기악작품을 작곡했다. 가야금산조에 엇모리를 넣어 가야금산조를 시대감 나게 발전시켰다고 평가받았다.

국제콩쿠르에서 수상한 우수한 민족음악가를 양성했고, 제3차 및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가야금을 연주해 특별상과 금메달을 받았고, 국기훈장 1급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안기옥 탄생 100돌을 맞아 평양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500~5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