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희

김소희

[ 金素姫 ]

요약 성악가(판소리). 판소리명창.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흥덕면 흥덕리 출생. 본명은 김순옥(金順玉). 아호는 만정(晩汀).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출생 - 사망 1917년 ~ 1995년
김소희

12세 때 아버지 김봉호를 따라 송만갑(宋萬甲) 명창의 문하에서 소리를 배웠고 전계문(全桂文)에게 가곡(歌曲)과 시조(時調)를 배웠다. 흥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光州)의 언니집에서 전남여고보(全南女高普) 시절 이화중선(李花中仙)의 "추월만정"(秋月滿庭) 눈대목에 매료되어 1929년 송만갑의 문하에 들어갔다고 한다.

1920년대 후반 조선권번(朝鮮券番) 소속 동기(童妓) 때 여창가곡(女唱歌曲)과 가사(歌詞)를 익혀 소녀명창으로 알려져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했고, 음반에 취입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 판소리 다섯마당의 눈대목을 익혀 음반취입과 방송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27~1942년 경성방송국(京城放送局)에 출연하여 "강산풍월(江山風月)"을 포함한 단가 및 가곡 "계락"(界樂) 등 여러 곡, 그리고 "육자백이" 등의 수많은 민요와 "춘향가" 등을 방송하였다.

1931년 12월 29일 처음으로 경성방송국에 출연한 김소희는 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의 눈대목을 방송했고, 눈대목을 방송할 때마다 "강상풍월"·"건곤가"(乾坤歌)·"장부가"(丈夫歌) 등의 여러 단가를 불렀다. 일제강점기 여러 레코드사에서 취입한 음반으로는 콜럼비아음반(4매)·오케음반(30매)·빅타음반(20매), 이상 총 54매가 있다.

1936년 2월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의 직속단체로 창극좌가 창단됐을 때 강태홍·김세준·김연수 등과 함께 창극활동을 전개하였다. 1936년 2월 9~11일 조선성악연구회의 가극(歌劇) 배비장전(裵裨將傳) 공연 때, 1936년 8월 28~29일 수해구제구악대회 때, 1938년 10월 16~17일 광주극장에서 열린 명창대회 때 출연하였다.

1937년 6월 11일 빅타 축음기회사의 춘향전 전편(全篇) 취입 때 출연했고, 한성준의 장구반주로 취입한 단가 "강상풍월"을 비롯한 판소리의 여러 눈대목은 일본 콜럼비아음반에 전한다. 김덕진(해금심상건(가야금정해시(퉁소) 등과 함께 취입한 "고당상"(高堂上) 등 수십 곡은 일본 빅타음반에 전한다. 오비취·신숙·이화중선 등과 함께 "기생점고"(妓生點考)를 포함한 수많은 곡은 오케음반에 전하며, 춘향전의 "오리정이별"(五里亭離別) 등은 군소회사음반에 전한다.

1938년 5월 23일 조선성악연구회 제5회 정기총회 때 이사로 선임됐다. 1940년 12월 24일 제일극장에서 박석기가 창단한 화랑창극단(花郎唱劇團)의 창단공연 때 조상선·한주환·김여란 등과 함께 춘향전을 비롯해 창작 사극 "봉덕사(奉德寺)의 종소리"와 김원학의 창작 창극 "팔담춘몽"(八潭春夢)의 공연 때 출연하였다.

광복 후 1948년 초 창단된 국극협회(國劇協會)의 대표인 박동실이 무대에 올린 "고구려의 혼(魂)" 공연 때 그녀는 성원목·공기남·김득수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8년 9월 1일 국악여성동호회(國樂女性同好會)가 출범했을 때 그녀는 회장 박녹주(朴綠珠), 부회장인 김연수와 임유앵, 총무인 조유색, 그리고 단원인 박귀희·한영숙·김농주 등과 함께 그해 10월 창단공연으로 시공관에서 공연한 창작 창극 "옥중화"(獄中花) 및 1949년 2월 시공관에서 무대에 올린 김아부(金亞夫) 작의 "햇님과 달님"에 출연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재건된 국악여성동호회의 햇님국극단 주최로 부산극장에서 유치진(柳致眞) 작의 "가야금" 공연 때 그녀는 박귀희·조농월·강남월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55년 한국민속예술학원(韓國民俗藝術學院)을 창설했고, 국악예술학교(國樂藝術學校) 설립에 공헌했으며, 개교와 동시에 판소리 교사로 재직하였다. 1958년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의 직속단체로 출범한 시범국극단(示範國劇團)의 대심청전 공연 때 승상댁 역을 맡은 그녀는 김연수(심봉사)·조애낭(심청)·김득수(주지승)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59년 국악진흥회(國樂振興會)가 수여하는 제4회 국악상(창악 실기상)을 수상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60년 3월 5일 국악예술학교가 출범했을 때 실기교사였다. 1962년 창단된 국립국극단(國立國劇團) 주최 제1회 창단기념 창극 대춘향전공연 때 그녀는 단장인 김연수 및 단원인 박귀희·강장원·강종철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회 국제민속예술제(國際民俗藝術祭)에 출연했고, 1964년 삼천리가무단(三千里歌舞團)의 한 사람으로 미국 전역을 순회공연하였다.

남원춘향제 민속예술경연 1등상(1931)·제4회 국악상(1959)·세계방송대상(1962)·문예진흥공로상(1972)·국민훈장 동백장(1973)·제1회 한국국악대상(1982)·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4)·남원시 예술문화대상(1987)·제1회 동리대상(1987)·제1회 방일영국악상(1994)을 수상하였다.

성금련(가야금)·지영희(해금)·김소희(양금)·김윤덕(거문고)의 합주

성금련(가야금)·지영희(해금)·김소희(양금)·김윤덕(거문고)의 합주

딸 박윤초(朴倫初)가 어머니 소리의 대를 이어가고 있고, 제자로 장영찬·안향연·김동애(金東愛) 등이 있다. 지구레코드사가 제작한 LP음반 5매의 『창극대춘향전』 취입 때 김연수·박녹주·박귀희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95년 4월 17일 별세했고, 1997년 4월 19일 호암아트홀에서 김소희 선생 2주기 추모음악회가 열렸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154~56쪽

참조어

김순옥(金順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