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남

공기남

[ 孔基南 ]

요약 성악가(판소리). 국립민족예술단 창극가수. 민족성악가수. 전남 화순군 도곡면 출생.
출생 - 사망 1917년 ~ 1971년

16세 때 아버지 (孔昌植)으로부터 를 배웠다. 19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판소리명창 (朴東實)에게 판소리를 배운 후 1940년 전라도창극단을 거쳐 1939년 박석기가 창단한 (花郎唱劇團)의 ·· 등과 함께 을 비롯해 사극 "봉덕사(奉德寺)의 종소리"와 김원학의 창작 ""(八潭春夢)의 공연 때 ··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5년 8·15광복 직후 (大韓國樂院)의 창극단에서 ·박동실· 등과 함께 활동했다. 1945년 8·15광복 직후 광주에 사는 박동실·· 등과 함께 (光州聲樂研究會)를 조직하고 대춘향전을 창단작품으로 공연하였다. 1948년 초 창단된 (國劇協會)의 대표인 박동실이 무대에 올린 "(魂)" 공연 때 그는 ··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정부가 수립되고 좌익음악인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월북했다. 1950년 7월 의용군에 입대했으며, 평양국립예술극장 민족성악배우, 1960년 공훈배우가 되었다. 1951년부터 1962년까지 국립민족예술단 창극가수, 1963년부터 황해북도예술단에서 일했으며, "춘향전"의 방자역과 이도령역, ""의 서동역, ""의 놀부역 등을 맡았다. 노래 "장군님 모시니"·"항일의 싸움터를 찾아서"를 작곡·연주했고, 국가훈장 2급을 비롯한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59~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