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원

강장원

[ 姜章沅 ]

요약 성악가(판소리). 나주(羅州)명창. 전남 함평(咸平) 출생.
출생 - 사망 1909년 ~ 1962년
강장원

16세부터 김창환(金昌煥)에게 소리를 배웠고, 1930년 경성에서 이동백(李東伯)의 법제와 더늠을 계승했다. 이동백의 수제자로 특히 수궁가에 뛰어나 임방울·김연수와 함께 당대 3명창으로 꼽혔다.

1933년 명창대회에 참가해 적벽가 중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이름을 떨쳤다. 창극좌조선창극단(朝鮮唱劇團)에 입단하는 등 창극활동에 전념했다. 1939년 5월 13일 조선소리경창대회 때 3등으로 당선되었다.

1939년 5월 21일 이동백은퇴공연(李東伯隱退公演)의 지방순회공연 때 찬조 출연했으며, 1939년 남도가요(南道歌謠) "화초사거리" 및 단가 "죽장망혜"(竹杖芒鞋)·창극조 "삼고초려" 방송을 위해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다.

1940년 2월 20~30일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 주최 창극 "옥루몽"(玉樓夢) 공연 때 출연하였다. 1940년 3월 18일 한해구제명창대회 때 출연했다. 1940년 6월 19~20일 조선예흥사(朝鮮藝興社) 주최 제1회 조선음악전(朝鮮音樂典) 때 출연했으며,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남도가요·창극조를 방송하였다.

해방 후 1946년 대한국악원(大韓國樂院)의 산하단체로 창단된 국극사(國劇社)의 이사를 지냈고, 대한국악원의 창극단에서 오태석·백점봉·조상선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8년 국극사의 창단원인 조상선·정남희·백점봉 등과 함께 유리촌(劉里村) 작 조상선(趙相鮮) 안무 및 편곡의 "선화공주"(善花公主)를 무대에 올렸다. 1949년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의 촉탁으로 창악을 담당했으며, 1950년 6·25전쟁 때 국군장병을 위문하기 위하여 군예대(軍藝隊) 국악소대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51년 국립국악원예술사(1951~1961), 1955년 국악사로 후진양성에 진력했다. 장기는 흥보가와 적벽가이며 그 중에서도 "삼고초려"에 능하다. 저력 있는 탁성과 가곡처럼 정대한 창법은 오가(五歌)에도 통했고, 1962년 2월 창단된 국립국극단(國立國劇團)의 단원을 지냈다. 1962년 창단된 국립국극단 주최 제1회 창단기념 창극 대춘향전공연 때 그는 단장인 김연수 및 단원인 김소희·박귀희·강종철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8~39쪽
  • 『韓國近代音樂人事典』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09년, 36쪽